해와달이 사는 집
금정총림 범어사 11암자 순례산행 본문
♣ 산행일자 : 2015. 05. 30 (토) 날씨 - 비
♣ 산행장소 :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일원
♣ 산행인원 : 집사람과 함께...
♣ 산행코스 : 범어사주차장-지장암-계명암-청련암-내원암-마애여래입상(미륵불)-금샘-고당봉-미륵사-북문-원효암-금강암-대성암-안양암-범어사-만성암-사자암-상마마을-범어사주차장(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7시간 40분, 14.32km(식사, 휴식 포함. GPS 기준)
◈ 산행기
지난 해 석가탄신일을 맞아 통도사 19암자 순례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마음 먹었던 범어사 11암자 순례산행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배낭을 꾸리며 집사람에게 함께 갈 의향을 또보니 별다른 답이 없다. 없다는 것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다는 뜻일터... 아침 일찍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부산으로 갈거라는 산행계획을 알려주고 다음 날 눈을 뜨니 6시다. 얼른 씻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먹거리와 물을 챙겨 배낭에 갈무리하고 집을 나서니 차를 갖고 가잔다. 오가며 시간을 많이 허비한다는게 그 이유라 군말없이 지하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몰고 와서 경주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달려간다.
부산의 범어사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면 대중교통이 수월한데 어찌 피곤한 육신을 장거리 운전으로 고단하게 하려는지... 게다가 경주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간간이 흩뿌리는 가랑비에 부산으로 가는 내내 과연 이대로 산행을 결행하는게 옳은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지만 1년 동안 기다린 계획을 저버릴 수가 없어 많은 양의 비만 아니면 암자순례를 결행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으며 네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대로 범어사 입구로 들어가 첫 번째 찾을 암자인 지장암 앞을 지나 사설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서 장비를 챙겨 지장암을 향한 걸음을 시작하며 부처님의 가피 아래 무사히 순례를 마치는 동안 많은 양의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무사산행을 기원해 본다.
11암자 순례 궤적
범어사 입구 가까이 있는 사설주차장에
애마를 세워놓고 암자순례를 시작합니다.
금정산 갈맷길의 한 구간에 속하는 도로를 따라
운치있는 데크길을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니
오늘의 첫 순례사찰인 지장암 입구에 닿게 됩니다.
1. 지장암
1980년대 창건된 부속암자로
범어사 고승들의 다비식을 거행하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정원에 꾸며놓은 작은 연못에 피어난
수련의 모습이 너무 예뻐 다가가 담아봅니다.
1) 수련, 2) 엉겅퀴, 3) 바위취, 4) 곰딸기
11군데의 암자를 다 돌아보려면
부처님 참배는 부득이 빼 먹어야 할 것 같아
조용히 지장암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에 담고 계명암을 향해 서둘러 길을 듭니다.
지장암 뒤쪽의 산길로 들어서면 등로가 나타나는데
이정표가 없어 잠시 헤메기도 했네요.
산신각 뒤쪽으로 나있는 직진길로 올라섭니다.
걷기 좋은 푸른 숲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지만
흩뿌리기 시작하는 비에 서둘러 비옷을 챙겨입고
계명봉 갈림삼거리를 지나 두 번째 암자인 계명암을 찾아듭니다.
1) 초롱꽃, 2) 물레나물, 3) 수련, 4) 기린초
2. 계명암(鷄鳴庵)
금정산 범어사의 암자로 약사여래불을 모신 약사전으로 보덕굴이라고도 합니다.
청룡과 백호가 완전히 감싸는 곳에 위치한 계명암은
주릉으로부터 내려온 강한 중심바위가 암자를 받쳐주고 입맥하고 있으며,
청룡 바위가 후부하게 혈을 감싸고 있는 좌선국으로
혈이 결지되어 기도의 효험이 좋은 자리라고 알려져 있답니다.
-계명암의 전설-
금정산 동북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에서 납자들이 수행정진을 했다.
그런데 납자들이 새벽 예불을 드릴 때가 되면 하늘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정확하게 그 시간을 알려 주었다.
또한 의상대사가 계명봉 서쪽 고개에서 절터를 찾던 중 한밤중에 난데없이 닭이 울었으므로 그 곳에 절을 지은 것에서 유래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효의사(曉義寺)라 불린 그 절은 사라지고 없지만, "계명봉"이란 이름이 생겨난 전설이 되고 있다.
계명암 일주문을 빠져나오며 합장 반배를 올리고
시멘트도로를 따라 내림길을 내려서면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두 명의 금강역사가 맞아주네요.
좌, 역사나라연금강, 우, 밀적금강.
범어사 청련암 푸를 청(靑)에 연꽃 연(蓮)자.
푸른 연꽃이란 사찰의 이름부터가 어딘가 심상찮은 이곳...
바로 청련암입니다.
3. 청련암(靑蓮庵)
부산 범어사의 산내 암자로 내원암과 함께
범어사 바로 옆에 있는 암자입니다.
범어사 11개암자 중 3.1운동 당시 부산지역의 본거지였고,
불문에서 전해오는 "금강영관" 이라는 무예를 수련하는
한국불교무술의 전통무예 선무도(불무도)의 총본산이랍니다.
1977년 범어사 금강연수원을 이곳으로 옮겨와
현재까지 수행자들에게 금강영관을 전수하고 있답니다.
그와 연관이 된 불교 조각상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마치 중국의 소림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지장원을 지키는 십이지신상을 비롯,
지옥중생의 구제를 서원하는 지장보살의 이상세계를 형상화한
지장대도장에는 수많은 신장,수호석상들이 사방을 둘러 싸고 있어
암자라고 하기엔 너무 큰 규모에 한 번 놀라게 되고,
절 곳곳에 스며있는 기묘한 선무도의 분위기 때문에 또 한번 놀라게 됩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사진을 찍으려니 카메라렌즈에 물기가 서려 촬영에 어려움이 많아 몇 컷 찍지도 못한데다 마침 불공을 드리고 있는 중이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가 여의치 않아 조용히 청련암을 빠져 나온다.
청련암 주차장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5~6분 정도 걸어가면 좌측으로 범어사 산내암자 '내원암'을 알리는 팻말이 있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원암 입구에 있는 포대화상.
4. 내원암
범어사의 산내암자로서 천수천안관세음보상을 모신 대자비전이 있고,
범어사의 제일선원으로서 성철스님도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큰 수님들의 수행처로서 유명한 곳입니다.
호랑가시나무(범발톱나무)
내원암을 빠져 나와 고당봉을 향한
등로에 만나게 되는 장군봉, 계명봉 갈림길
비가 오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우산을 쓰고 산행을 이어가는 산님들을 보면서
부산의 진산임을 새삼 느끼게 되는군요.
또 다른 장군봉 갈림길을 지나고
앉아 쉬기에 적당한 바위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면서 목을 축이고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만들어간 궤적을 확인해 봅니다.
곧장 직진하면 고당봉으로 갈수 있지만
하늘릿지를 오르며 내려다 본 마애불을 찾아보고파
우측 미륵불 팻말을 따라 오름길로 방향전환을 합니다.
가야할 미륵불을 찾아가는 길의 초입 오름길입니다.
아마도 송전철탑을 건설할 때 만들어진 길인 것 같네요.
연이어 서있는 철탑 두 개를 지나면
보기에도 시워스러운 잣나무 조림지를 지나게 되고
조림지 끝 고갯마루에는 사거리갈림길이 기다리고 있네요.
미륵불을 찾으러 직진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와야 한답니다.
고갯마루에서 약 5분 가량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암벽에 선각으로 새겨진 마애여래 부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가산리마애여래입상 (架山里磨崖如來立像)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산 3·2번지
범어사(梵魚寺) 북쪽 금정산(金井山)의 화강암 절벽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선각 마애불입상(磨崖佛立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높이 12m. 불상은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하여 세부표현 뿐만 아니라 윤곽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둥글고 봉긋한 육계(肉?)가 표현되었으나 희미하다. 눈썹은 깊이 새겨 뚜렷하게 남아있으나 눈은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코는 큰 편이며 입은 작다. 삼도가 표현되었으며 어깨는 약간 각지게 나타내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의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오른쪽 옆구리에서 왼쪽 어깨로 가로지르는 한 단의 옷섶이 비교적 둥근 사선을 그리기 때문에 가슴이 많이 드러나 보인다.
무릎 아래쯤에는 두 줄의 완만한 V형을 그리는 법의 끝단이 남아있으나 불상을 표현한 각선(刻線)이 매우 얕고 가는데다 마모가 심하고 바위 여러 곳에 균열까지 있어 천의(天衣)의 형태나 세부 주름 표현을 자세히 알아 볼 수 없다.
수인(手印) 또한 명확히 알아볼 수 없는데 오른손은 가슴부근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뜨린 표현으로 짐작된다.
광배(光背)는 알아볼 수 없으나 대좌는 단판의 꽃잎을 선각한 연화대좌로 추정된다.
표현이 분명하게 남아있는 부분이 거의 없을 만큼 마모가 심하여 분명히 알아볼 수는 없으나 상호의 표현이나 각진 어깨선 그리고 거구의 신체에 생략된 선들과 도식적으로 단순화된 표현들에서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자료 인용)
마애불에서 올려다 본 금정산 하늘릿지.
다시 기회를 봐서 올라볼 생각을 하면서 왔던 길 되돌아갑니다.
사거리갈림길에서 고당봉을 향한 등로를 이으면
범어사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장군봉, 호포에서 연결되는
등로와 합류가 되는 안부에 갈림길에서
금정산 최고의 명물 '금샘'부터 다녀오기로 합니다.
북문, 고당봉 갈림 삼거리를 곧장 지나 내림길을 이으면
마치 영알의 배너미재 너머에 있는 배바위를
연상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웃는 여유도 가져보고
금샘을 오르기 위해 밧줄구간을 조심스레 올라섭니다.
금정산 금샘 (金井山 金井)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2호.
금정산성 북문에서 고당봉 쪽으로 300 여m쯤 오르다보면 고당샘이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100여m쯤 내려가면 바위군 맨 끝에 우뚝 솟은 바위 정수리에 언제나 금빛 물이 고여 있다는 금샘이 있다. 금샘의 유래에 대해서는 1432년에 편찬된『세종실록지리지』「경상도」<동래현조>와 1481년에 편찬된『동국여지승람』「동래현」<산천조>에 기록되어 있다.
금샘 주위에는 낙동강에서 올라온 안개가 낮에 햇빛의 열기로 데워지고, 데워진 바위가 밤이 되면 주변 수분을 빨아들이는 작용으로 샘물이 차게 된다고 한다. 지금도 10월의 해 질 무렵에 금샘을 보면 물 안에 물고기 형상의 홈이 파여 있어 석양과 단풍빛이 반사되어 금빛 물로 변화하고, 바람에 파장이 일렁이면 마치 금빛 물고기가 헤엄치며 노니는 것 같이 보인다.
금샘은 샘 둘레의 곡선미, 물결의 금빛 파장과 함께 사방이 확 트인 아름답고 장엄한 풍광을 가진 곳이며, 부산의 진산이자 제일 명산인 금정산의 이름이자 범어사 창건 설화와 절 이름의 탄생 배경을 간직하고 있는 명소로,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채 신비한 모습으로 오랜 세월을 담아 왔다 지금도 범어사에는 금샘의 물이 마르면 큰 재앙이 온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백악기 말인 8천만 년 전부터 형성된 화강암체가 오랜 세월 동안의 풍화과정과 기후변화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금샘은 그 자체로서도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며, 주변에 널리 분포하는 토르와 암괴류가 이 일대에 자생하는 등나무군락지 등과 조화를 이루며 절경을 자아내고 있어 경관적 가치도 매우 뛰어난 곳이다.
금샘을 구경하고 고당봉을 향해 등로를 이으니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군요.
고당봉 오르기 전의 바위 아래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간 음식을 내어놓고 요기를 하고 가기로 합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올라선 고당봉에서
비록 멋진 조망은 아닐지라도 운치있는 풍경들을 담아봅니다.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의 최고봉인 고당봉입니다.
안개 자욱한 날씨에 조망이라곤 전혀 없어
고당봉 정상부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지만
미끄러운 바윗길이 위험천만이네요.
고당봉 정상부 풍경
다음 행선지인 미륵사를 향한 진군을 시작합니다.
고당봉 아래 계단을 내려 등로를 따라 진행하면
금샘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금줄이 쳐져있는 우측 숲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숲속으로 몸을 숨기니
금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버립니다.
이정표도 없는 갈림길이 얼마나 많은지
트랙을 만들어 가지 않았다면 한참을 헤멨을 것 같네요.
GPS의 지도와 비교해가며 안개속 미로를 따라 진행하니
마침내 커다란 바위가 배경을 이루고 있는 미륵사에 닿게 됩니다.
미륵사는 절 중앙에 '염화전'이 있고,
그 뒷쪽 '미륵봉' 중간의 큰 바위돌이 엉켜 있는 '좌선바위'가 있는데,
해가 져서 바위 틈새가 보이지 않으면
바위 전체가 미륵불로 보인다 하여 좌선바위라고 한답니다.
5. 미륵사(彌勒寺)
미륵사(彌勒寺)는 금정산 고당봉으로 오르는 높이가 약 50m 정도 되는 거대한 암봉 아래 위치한다.
통일신라 678년(문무왕 18)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한 해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다.
원효대사는 미륵암에 주석하면서 ‘미륵 삼부경’ 중의 『미륵상생경종요 彌勒上生經宗要』를 썼다. 또한 대사는 이곳에서 호리병 5개를 구하여 왜구의 배 5만 병선을 물리쳤다고 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내용은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왜구 10만 병선을 불력으로 물리쳤다는 설화와 비슷하다.
범어사와 미륵암의 창건 연대가 같은 만큼 두 대사가 같은 시기에 금정산을 찾아 각기 불력과 도력으로 왜적 대군을 격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왜적 첩자를 유인하기 위해 대사가 장군기를 꽂았다는 바위구멍이 지금도 미륵사 독성각 옆에 그대로 남아있다.
원효대사 당시에 미륵사 뒤 바위에서 쌀이 조금씩 나왔다는 설화도 전하는데, 상좌스님이 쌀이 계속 나오니까 욕심을 부려 많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나무를 넣어 집적하다보니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샘이 되어 물이 나오고 있다.
독성각의 '독성'은 원래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던 것인데, 나중에 부조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륵봉 암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자리한 미륵사는 산문(일주문)이 없다. 원효대사의 노적가리 바위가 좌우에 위치하여 양식 걱정은 없다는 말이 전해온다.
미륵사는 당우들의 명칭에서 다른 사찰과 다른 점이 드러난다. 미륵전, 미륵암, 미륵사가 따로따로 서 있는 것으로 미륵암에서 미륵사로 승격되면서 이런 당우의 명칭이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좌선바위는 거대한 바위로 스님이 좌선하는 모양과 같으며, 현재 건물로는 염화전, 오백전, 도솔선원 등이 있다.
미륵사를 빠져나와 다음 행선지를 향한 걸음을 떼면
주의깊게 주변을 살펴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알바하기 십상이니까요.
미륵사 계단을 내려서면서 곧장 가지말고
좌측의 산길로 진행해야 합니다.
주변에 조그맣게 기왓장에 고당봉, 북문 가는
길이라는 글귀를 참고하면 될듯 싶네요.
뚜렷하고 걷기좋은 솔숲길을 따라 10여 분을 걷다보면
고당봉에서 내려오는 주등로와 다시 합류가 됩니다.
미륵사를 빠져나와 곧장 나있는 등로를 따라
북문 방향으로 진행해도 되지만
결국엔 이 길이 지름길인 셈이 되는군요.
금정산성 북문
금정산성
사적 제215호. 길이 1만 7336m, 동래온천장의 북서쪽 해발고도 801m의 금정산정에 있는 한국 최대의 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약 4km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5대 사찰중의 하나인 범어사를 품고 있는 금정산은 산세가 웅장하며 부산 시민의 휴식처로 사계절 두루 인기 있는 곳이다.
산림이 울창하고 산세가 비교적 웅장하며 도심지 가까이 위치한 시민들의 휴식처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역사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산으로서 호국사찰 범어사와 우리나라 5대 산성의 하나인 금정산성이 있음. 낙동강 지류와 수영강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루고 금강공원 및 성지곡공원 등이 있다.
북문에서 사진 몇장 담고 원효암을 찾아 가기 위해
성벽을 따라 오름길로 진행합니다.
앞을 가로막는 우거진 수풀에 또다시 온 몸은 후즐근해지고
숲속을 헤쳐나가느라 집사람이 쓰고 있던 우산이 망가져버린
여름철엔 권하고 싶지 않은 등로를 악전고투 끝에 빠져나오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이름모를 기암에 닿게 되고
계속되는 등로를 따라 걸으니
그제서야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금정산성 종주구간임을 알게 됩니다.
쉼터가 있는 곳에서 이정표에는 나타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원효암으로 가는 길이니 주의해야 할 곳입니다.
숲 속으로 들어서 잠시 길을 잇게 되면 그제서야 이정표가 나타나며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네요.
등로 좌측으로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간간이 철조망 아래로 개구멍이 있는걸 보면
원효암으로 가는 지름길인 모양인데
초행에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
계속 등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합니다.
철조망을 따라 계속 진행한다 생각하고 등로를 이으면
철조망 사이로 나있는 출입구를 만나게 되고
안쪽으로 현효암을 알리는 아크릴판이 보인답니다.
숲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니 일주문 대신 석탑부터 만나게 되니
이 길도 결국엔 원효암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네요.
원효암 '서편 삼층석탑
(부산 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2호)'
높이 2.33m로 신라 말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인 동편 삼층석탑은 높이 1.9m로서 고려 때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의 원효암 서북쪽으로 30m 떨어진 공터에 있었던 것을 원효암 경내인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6.원효암
금정산 원효암
범어사 원효암(元曉庵)은 금정구 청룡동 산 524번지에 있으며, 2개의 석탑인 원효암 동·서 삼층석탑이 경내에 있어 각각 부산시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암자는 통일신라시대(10세기 말)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한 해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미륵암과 함께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정을 알 수 있는 것은 '의상이 있는 곳에 원효가 있고, 원효가 있는 곳에 의상이 있다'는 말에서와 같이 한국불교의 가장 우뚝한 봉우리로 숭앙받고 있는 의상과 원효는 구도의 동반자였다.
두 사람은 구도(求道)의 길에서 만난 선후배이자 친구사이였으며, 그들의 불교세계도 독특한 철학을 구축한 국가와 민중의 등불이었다. 부산의 명산인 금정산에서도 이들의 만남을 알 수 있다. 의상망해의 '의상대'가 있고, 그 위쪽 200m 지점에는 원효대사의 좌선 장소였던 '원효석대'가 있다. 원효암에 현재 남아 있는 범어사 조실 지유(知有)스님이 장좌불와의 수행을 계속하고 있으며, 또한 주석하고 있다. '조실 스님'이란 부처님의 길을 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좌표이자 스승의 상징이 되는 큰스님을 일컫는 말이기에 범어사와 크고 작은 범어사 말사의 많은 스님들에게 스승이며, 정신적 지주가 되는 범어사의 가장 큰스님이 원효암에 주석해 계신다는 말이다. (내용은 웹에서 인용)
범어사 산내암자 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원효암
법당 우측으로 빠져나와 옛길을 따라 진행하면
전망이 멋진 의상대를 만나게 된다는데
오늘은 전혀 조망을 볼 수가 없어 궂은 날씨에
바위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등로를 계속 이어갑니다.
원효암 출입 나무문이 이채롭네요.
여기서 또 짧은 알바를 경험하게 됩니다.
철조망을 따라 고당봉, 북문 방향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북문 방향의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지도를 확인하면서
금강암으로 바로 내려서는 길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범어사 방향의 등로를 따르다 금강암을 목표로 삼고
이정표도 없는 산길을 GPS에 의지해 진행해 나갑니다.
인적이 없는 산길을 따라 내려서니 출입금지 구역이었네요.
금줄을 빠져나오면 바로 앞에 금강암 빗돌이 있어
한치의 오차없이 제대로 길을 찾은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금강암 안으로 들어갑니다.
금강암 앞에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
바위골이 있는데 이곳을 돌바다라고 합니다
금강암 일주문
모든 현판이나 글씨가 모두 한글로 되어 있어 눈길을 끄는군요.
7. 금강암
금강암은 범어사 왼쪽 금정산성 북문 쪽으로 가는 길에
바위로 된 계곡-돌바다를 따라 올라가면
'북문쪽' 등산로의 마지막 암자입니다.
당우로는 대자비전을 중심으로
선혜당, 자혜당이 자리하고 뒷편으로는 범종각이 위치하고 있고,
대자비전 법당에는 본존불로 아미타불과
관세음, 대세지보살을 협시불로 모시고 있습니다.
선혜당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부처님 말씀을
'금강암'에서는 한글로 되어 있는것이 특색이랍니다.
자혜당
편액과 주련이 한글로 되어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는군요.
금강암을 나와 돌길을 따라 내려서면
계곡 전체가 커다란 바위로 메워져
장관을 이루는 곳을 만나게 됩니다.
일명 '돌바다'로 불리는 금정산 암괴류입니다.
바위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어
더운 여름날 피서를 즐기려는 행락객들이 북적인다고 하는군요.
8. 대성암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암자로서
'覺海禪院(각해선원)'이라는 현판이 보이는군요.
다른 곳의 암자와는 달리 조용하면서도 정갈함에 유난히 조심스럽네요.
스님들 참선도량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곳이지만
크게 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용히 둘러 볼 수 있습니다.
또 사찰음식으로 꽤 이름이 나있는 암자로 알려져 있는 곳이랍니다.
9. 안양암
안양암은 범어사 본당 좌측의 첫 암자로
1900년에 개설된 안양선사로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공간 이었으나,
지금은 조실스님이 계시는 곳으로
일반사람들은 통제가 되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보니
큰 공사가 벌어지고 있어
사진 한장만 간단히 담고 되돌아 나와 범어사로 들어갑니다.
1) 염주괴불주머니, 2) 송엽국, 3) 자주달개비, 4) 뱀무
범어사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
(부산 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 63호)
하나의 건물에 세 전각이 있는 것이 특이하고,
가운데 '독성전' 입구의 화려한 단청과
아치형 출입과 꽃문살이 독특하네요.
범어사 지장전
범어사(梵魚寺)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때(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 중 하나로 창건하였다.
화엄경의 이상향인 맑고 청정하며 서로 돕고 이해하고 행복이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설립된 사찰로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리운다.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선승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의상대사를 비롯하여 원효대사, 표훈대덕, 낭백선사, 명학스님과 그 대에 경허선사, 용성선사, 성월선사, 만해 한용운선사, 동산선사 등 고승들이 수행 정진하여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찰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950년대 동산스님이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후 한국근대불교를 이끌었으며,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사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수행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충하였고, 사부대중의 수행정진과 화합을 바탕으로 2012년 11월 총림으로 지정되었다.
지유대종사를 초대방장으로 모시고 부산과 영남 지역은 물론 우리나라 불교의 중심 '선찰대본산 금정총림'으로 자리매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는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금샘'이라고 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고기와 황금우물 그리고 산 이름을 따서 금정산 범어사라고 절 이름을 지었다. (인용 : 범어사 홈페이지)
관음전(觀音殿)
범어사 대웅전(보물 434호)과 관음전,
범어사 '삼층석탑'(보물 제 250호)
금정총림 범어사 (金井總林 梵魚寺)
총림(叢林)이란 승려들의 참선 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전문기관인 '율원' 등을 갖춘 사찰로서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백양사, 수덕사의 5대 총림과
쌍계사, 동화사, 범어사가 추가로 총림으로 지정되어 우리나라에는 8대 총림이 있습니다.
아직 가야할 암자가 두 군데나 남아있어
경내를 온전히 돌아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범어사를 빠져나와 지나왔던 대성암 앞의 돌바다를 지나
원효암으로 가는 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궤적을 비교해가며 산길로 다시 들어갑니다.
이정표도 없는 산길이지만
뚜렷한 등로라 궤적을 살펴가며 걷노라니
숲길을 빠져나오게 되면서 비포장도로를 만나게 됩니다.
이 도로는 원효암으로 가는 도로입니다.
결국엔 대성암에서 원효암을 향하는 등산로와
찻길 사이의 지름길로 온 셈이었네요.
이곳에서 만성암을 향한 등로는 건너보이는 숲길입니다.
등로는 상마전마을의 음식점을 빙 돌아가는 숲속 등로로
산 아래쪽에는 행락객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끊이질 않네요.
음식점인 '손씨집' 옆을 내려서면
금정산 제3등산로 안내판이 서있고,
입구부터 여느 암자라기보다는 저택같은 느낌의
대문이 있는 만성암 안으로 들어섭니다.
10. 만성암
만성암은 범어사 남쪽 상마마을 금정산 제3등산로
들머리에 있는 암자로 비구니 수행도량입니다.
2층으로 된 양옥 건축물인데
2층에 기와로 된 전각에 법당을 꾸며 놓았네요.
11.사자암
사자암은 범어사 순환도로를 따라
범어사 입구를 지나 남쪽 상마마을에 있는 암자로
범어사 만큼이나 오래된 1400년의 고찰입니다.
사자암의 중심 법당은 '관음전'으로
관음전 앞의 뜨락은 오래된 바위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사자암에 주석하고 계시는 스님과 잠시 한담을 나누고
합장 반배로 인사를 여쭙고 사자암을 나옵니다.
암자순례를 모두 마치고 주차장을 향해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많이 힘들었을텐데 내색없이 잘 따라와 준
집사람에게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건네줍니다.
드디어 출발지였던 범어사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염원했던 범어사 암자순례 산행은 그 끝을 맺게 됩니다.
출발부터 흐린 날씨에 비가 올까 노심초사했었는데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포기할 수가 없는 암자순례 산행이라 우중에도 강행을 하는 무리수를 두었지만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고 군데군데 약간의 알바를 경험했지만 전반적으로 등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오늘의 암자순례길.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의 참뜻을 조금이나마 기리고자 석가탄신일을 맞아 기획산행으로 꾸며본게 이번이 세 번째지만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또다른 코스로 순례산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자주 찾지 않은 금정산이다보니 낯선 등로에 이정표도 고당봉을 향한 등로 외에는 많이 미흡한 상태라 지도만 갖고 찾아가기에는 무리일 듯 싶다. 다행히 문명의 이기인 GPS에 트랙을 만들어 간 탓에 그나마 큰 고생은 하지 않았음에 다행이다 싶고 비가 오는 가운데도 끝까지 불평 한 마디없이 묵묵히 잘 따라와준 집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하루종일 함께 비를 맞으며 낯선 땅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애마에 올라타고 범어사를 빠져나와 주변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고속도로를 달려 귀로에 오른다. 우중산행에 장거리 운전까지 하려니 조금은 피곤한 육신이지만 걸어보고 싶었던 산길을 무사히 마친 흡족함에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며 부지런히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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