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신비스러운 마이산 탑사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주로 떠난 여행 본문
5일간 이어진 황금연휴인 한가위.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부모님과 장인의 차례를 모시고 난 다음 날 집사람과 함께 집을 나선다.
아들은 먼 타국에 있으니 당연히 못오게 되고 직장생활하는 딸내미는 지난 주에 다녀간 까닭에 이번 추석은 집사람과 둘만 있으려니 적적하기 이를 데 없어 여행이나 다녀오자며 나서는 길이다. 산행과 여행을 겸한 2박3일의 일정으로 맨 먼저 먼 곳에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찾지 못했던 진안의 명산 마이산을 종주해보고픈 마음에 네비게이션에 마이산 남부주차장을 입력하고 차를 몰아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달려나가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흐리기만 했었는데...
하는 수없이 계획을 변경하여 마이산 산행을 취소하고 여행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경주와 마찬가지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라북도의 도청 소재지인 전주를 향해 달려간다.
대구-포항간 고속국도를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광주-대구고속도로 함양JC에서 통영-대전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다시 장수 JC에서 익산-포항고속도로를 달려가던 중 비록 산행은 못할지라도 마이산 탑사는 구경하고 싶어서 진안IC를 빠져나와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대로 달려가니 마이산 탐방코스 중 하나인 남쪽의 탑사가 있는 남부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주차비:이천원)
비가 오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추석연휴를 맞아 가족단위의 나들이객이 많아 주차장엔 만차를 알리는 간판이 서있다. 주차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겨우 한자리를 차지한 뒤 우산을 받쳐들고 도로를 따라 탑사를 향한다.
입장료 3,000원(본인은 무료)을 지불하고 조금 걸어가니 천년고찰이라고 하는 금당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리 볼게 없는 것 같아 사진 몇 장만 남기고 몇 걸음 옮겨가니 도로 양켠으로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호객행위를 하느라 시끄럽기 그지없다. 유명 사찰의 입구마다 으례껏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식당가들의 모습은 그리 보기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진다. 새삼 진입로부터 일주문까지 가게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데다 조용하고 운치있는 비포장 황토길이 멋졌던 의성 고운사가 머리속에 떠오른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는 포장도로를 따라 탐방객들과 어울려 걷다보니
'탑영지'라는 저수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 뒤로 마이산이 살짝 보입니다.
흩뿌리는 빗속에서도 오리배를 타는 사람들이 꽤 보이는군요.
천년고찰 '진안 금당사'
드디어 주차장에서 이십여 분을 걸어 도착한
탑사 입구에서 기념촬영 하나 남기고 경내로 들어갑니다.
사진으로만 봐왔던 마이산 탑사 전경입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작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네요.
좌측 절벽 밑에 영신각,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대웅전,
그 뒤로 산신각이 살짝 보이는군요.
수박 크기의 돌덩이부터 엄지 손가락만한 작은 돌멩이까지
돌에 돌을 포갠 크고 작은 돌탑과 석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이산 탑사(馬耳山 塔寺).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떡없는 석탑들이 장관을 이뤄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불가사의로 소개되고 있답니다.
탑사의 하이라이트 천지탑입니다.
양 탑을 조성하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네요.
그나저나 맨 꼭대기는 어떻게 쌓았을까?
참 궁금해집니다.
이갑룡 처사가 팠다는 '용궁'이라 불리는 이 샘은
바로 남도의 젖줄인 '섬진강'의 발원지라 합니다.
돌탑도 돌탑이지만 탑사에는 또다른 명물인
암마이봉에 붙어 자라는 거대한 능소화가 있답니다.
능소화(凌霄花)가 흐드러지게 필 때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이 능소화는 1983년 주지 이혜명스님이
식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수령이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마이산의 정기를 먹고 자란 탓인지
암마이봉의 절벽을 타고 오르는
그 위용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암마이봉에 파여져 있는 커다란 구멍들을 볼수 있는데
타포니(tafoni)지형이라고 한답니다.
타포니(tafoni) 지형
마이산을 남쪽에서 보게되면 봉우리 중턱 급경사면에 군데군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무언가 파먹은 것처럼 움푹 움푹 파인 많은 작은 굴들을 볼수 있은데 이는 타포니 지형이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나 마이산 타포니 지형은 풍화작용이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 진 것으로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
한 눈에 보아도 오랜 기간
정성껏 쌓아 올렸음이 분명한 돌탑들입니다.
여타 탑들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수 있네요.
보고 있노라면 저 탑들을 쌓은
한 사람의 노력에 저절로 '경외감'이 느껴집니다.
전주로 가서 관광을 계속해야 할 시간이지만 이왕 예까지 왔으니
제대로 구경하고 가자며 천왕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숫마이봉이 가까이 다가왔네요.
'고마리'
'물봉선'
숫마이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은수사.
한 눈에 보아도 정말 멋진 곳에 터를 잡았네요.
천연기념물 제386호인 '은수사 청실배나무'입니다.
뿌리에서는 네 줄기로 올라오다가
위에서는 다시 합쳐지는 특이한 모양입니다.
한국불교태고종인 은수사(銀水寺).
은수사 구경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려다
천왕문으로 가는 안내판을 보고 목재계단을 올라갑니다.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 암.수 마이봉 사이의
천왕문에 도착하여 만난 안내판입니다.
안내판 우측으로 암마이봉을 오르는 등산로가 보이는데
짧은 거리에 그냥 발걸음을 돌리기가 아쉬워 산행에 나서봅니다.
암마이봉을 오르다 올려다 본 숫마이봉을 보면서
마이산은 우라나라에서 가장 특이하게 생긴
산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마이산은 동쪽의 숫마이봉(680m)과
서쪽의 암마이봉(686m)이 나란히 있으며
관목과 침엽수, 활엽수 등이 자라고 있기도 하지만
거의 통바위로 되어 있는 곳으로
숫마이봉은 난코스로서 등산이 불가능하고
암마이봉만 산행이 가능한데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는 코스가 아닌데다
철제 난간과 계단 등이 잘 마련되어 있고 난간 손잡이도 이어져 있어
전혀 위험하지 않게 오를 수가 있는 딱히 산행을 한다기보다는
관광을 겸한 트래킹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잠시 그쳤던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발 아래로 보이는
진안읍의 모습이 비구름속으로 숨어들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별 3개 만점을 받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소로서
한국의 명승지 12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진안 마이산은
사계절마다 달리 불리는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봄에는 돛대봉
- 바다에 떠있는 배의 돛같이 보이기 때문에...
여름에는 용각봉
- 푸른 숲에 우뚝 솟은 형상이 용의 뿔처럼 보이기 때문에...
가을에는 마이봉
- 단풍 속 바위 형상이 말의 귀처럼 생겨서...
겨울에는 문필봉
- 흰 눈 속에 솟은 봉우리가 붓 끝에 먹물을 찍은 것 같아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가며 20분 가량 등로를 치고 오르니
아담한 정상석이 반겨주는 암마이봉 정상에 서게 됩니다.
조망이 너무 멋진 곳이지만 짙은 비구름속이라 포기를 하고
잠시 우산을 던져놓고 흔적을 남겨봅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와보고 싶었던 마이산 정상을 밟았다는 만족감에
계단을 내려서는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가볍기 그지 없네요.
다음 기회에는 꼭 종주산행을 하면서
마이산의 절경을 제대로 보겠다는 야무진 각오를 다지며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와 등산로 지킴터에 닿게 되고
다시 천황문에 도착하여 건너편 숫마이봉의 화엄굴을 올라보기 위해
다가갔지만 통제를 해놓아 불발에 그치고 맙니다.
아쉬운 마음 접어두고 다시 은수사를 향한 걸음을 시작합니다.
암마이봉의 암벽을 살펴보면 언뜻 자갈과 시멘트를 버무려놓은
콘크리트 타설을 해놓은 듯한 모습이라 신기하게 보이는군요.
은수사에서의 하산로는 올라왔던 방향이 아닌 곳으로
내려가니 뜻밖에 '꽃무릇'을 만나게 되는군요.
'풍엽초(족두리꽃)'
'꽃범의꼬리'
돌탑쌓기체험장에서 쪼그리고 앉아 돌탑을 쌓고 있는 모습.
어떤 염원을 담아 쌓고 있는지...
순수하게 돌만으로 곧게 쌓아 올린 돌조각 하나하나가 신비로움을 더했던 마이산 탑사와 내친 걸음에 후딱 올라본 암마이봉...
사진으로만 봐왔던 곳을 직접 찾아 돌아보며 아주 웅장하거나 넓지 않은 탑사지만 신비로움과 절벽 사이의 멋진 풍광들이 많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것임을 새삼 느끼며 탑사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돌아와 늦은 요기를 하고서 차를 몰아 전주로 향한다.
미리 예약해 놓은 오페라21호텔을 찾아 체크인을 하고 여장을 풀어놓은 뒤 곧바로 호텔을 나와 남은 일정을 소화해 나간다.
전주의 대표적인 명소인 한옥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찾았지만
주변에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전주천 건너편 도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전주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 한옥마을로 찾아가기로 합니다.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맛과 멋의 고장' 전주를
50여년 만에 다시 찾으니 새삼 감회가 새롭네요.
맨 먼저 조선시대 문화가 있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
전주향교부터 찾아 들어갑니다.
전주향교의 외삼문 역할을 하고 있는 만화루입니다.
1987년 전주향교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이 자리에 있던 지경문을 철거하고 새로 세운 건물이라고 합니다.
전주향교(全州鄕校)는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려 말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습니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 위치한 전주 향교는 유학교육과 인재양성을 위해 지방에 설립한 교육기관입니다.
향교는 고려시대에 세웠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당시에는 조선 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 근처에 있었으나, 향교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끄럽다하여 전주성 서쪽 황화대 아래로 옮겼다고 합니다. 지금 위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뒤, 관찰사 장만이 옮긴 것입니다.
현재 이 향교에는 여러 훌륭한 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비롯해 동무·서무, 계성사,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인 명륜당 등의 여러 건물이 있습니다.
우리의 옛 교육시설을 둘러 볼 수 있는 이곳은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기능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봄·가을에 공자께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보름에는 향을 피우고 있습니다.
명륜당(明倫堂)
서울의 성균관을 본뜬 명륜당은
전주의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학 공간입니다.
현재에도 인성교육 전통문화학교을 개설하여 교육중이며
각종 행사장과 유림들의 제후행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명륜당 앞에 자리잡고 있는 400년 된 은행나무.
전주향교를 빠져나와 이목대를 찾아갑니다.
이목대를 찾아가는 걸음에 온통 벽화로 도배된
건물들을 볼수 있는데 바로 자만벽화마을이라고 하는군요.
요즘 달동네의 담벼락을 벽화로 꾸며 관광지로 변모한 곳이
워낙 많은데 이곳 또한 예외는 아닌 듯 싶네요.
이목대(梨木臺)
이목대는 이성계의 4대 할아버지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출생지라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전주 이씨들은 이안사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살다가 함경도로 이사했다고 하는데
고종 광무 4년(1900)에 이곳이 목조가 살았던 터임을 밝힌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라는
고종의 친필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비각은 당초 오목대의 동쪽 높은 대지 위에 있었는데
1986년 도로 확장공사로 이 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하는군요.
자만벽화마을 전체를 다 구경하기에는
시간이 늦은 것 같고 배꼽시계 또한 울려대기 시작하니
이목대 주변의 벽화마을만 간단히 둘러보기로 하고
다음 행선지인 오목대를 찾아갑니다.
오목대(梧木臺)
오목대는 이성계가 1380년(고려 우왕 6년)남원 황산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그의 선조가 살았던 이곳에 들러
여러 종친들을 모아 잔치를 베푼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제국 광무(光武) 4년(1900)에 비석을 건립했는데,
태조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의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라는 비문은
고종황제가 직접 쓴 친필을 새긴 것이라고 하는군요.
오목대에서 전주한옥마을로 연결되는 계단을 따라 잠시 내려가면
한옥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처가 있는데
반드시 찾아봐야 할 필수코스인 것 같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의 역사(jeonju hanok village History)
한옥마을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의 풍남동과 교동 일원에 있는 면적 296,330m2의 한옥마을입니다.
현재 995가구, 2,202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총 708동의 건물 중에 한옥이 543개이고 비한옥이 165개입니다.
전주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5천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원래 자연부락 형태의 마을들이 산자락에 형성되었었으나 665년 신라 문무왕 때 완산주(完山州)가 설치되면서 주거지가 평지로 이동했습니다. 전주사람들의 본격적인 평지에서의 생활은 전주성의 축조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전주성을 중심으로 고려시대에는 한벽당 오목대 간납대 등이 지어졌고, 그 주위로 옥류동, 자만동과 같은 마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이 마을들이 현재 한옥마을의 모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주한옥마을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을사조약(1905년) 이후입니다. 원래 일본인들은 전주읍성의 서문 밖(지금의 다가동)에 거주하였습니다. 주로 상인이나 천민들이 성 밖에 거주하기 때문에 성 안과 밖은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11년 말 전주읍성의 남문을 제외하고는 성곽이 모두 철거되면서 일본인들이 성 안으로 거주지를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늘어나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으로 뭉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를 가진 한옥들이 즐비한 지금의 전주한옥마을입니다.
오목대 구경을 마치고 한옥마을로 내려와 유명 맛집인
'족떡이네'를 찾아 족발과 떡갈비의 오묘한 맛을 즐기고
야경이 멋스러운 한옥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눈요기를 한 후에
남천교의 청연루를 지나 주차해 놓은 애마를 찾으러 갑니다.
남천교 위에 세워져 있는 청연루 야경.
전주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조식을 든든히 챙겨먹고 짐을 꾸려 체크아웃을 하고 거리로 나오니 여전히 비는 계속되고 있다.
2박 3일로 예정하고 찾아온 전라도 여행길은 친구 부친의 부음 소식에 1박2일로 마무리를 하고 서둘러 돌아가야 할것 같아 오전 시간에 간단히 한옥마을 주변의 관광지와 가고팠던 곳을 한 두군데 찾는 것으로 전주여행을 마치고 귀로에 오를 생각이어서 먼저 우리나라 3대 성당 중 하나인 전동성당을 찾아간다.
아름다움과 웅장함의 상징 '전동성당'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히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함을 보여줍니다.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입니다.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건립됐다고 하는군요.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중국에서 벽돌 제조 기술자를 직접 데려 오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공사 시작 7년 만인 1914년에 외관공사가 끝났고, 이후로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어 1931년에 완공된 전동성당은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라 할수 있는 곳입니다.
또한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끌고 있답니다.
전동성당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는
하얀 그리스도상의 모습입니다.
동상 하나로 하여금 성당의 아름다움이 더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웅장한 느낌을 주고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전동성당의 내부 모습.
사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입니다.
사제관은 1937년에 전주교구청사와 교구장 숙소로 사용되었으나 1960년대 이후부터는 주임신부와 보좌신부의 생활공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전동성당의 사제관은 르네상스 양식을 바탕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미한 절식 건물로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외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당시의 건축기법을 살필 수 잇는 중요한 건물입니다.
성당 뒤편에 세워져 있는 '피에타상'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본뜬 모습이라고 합니다.
전주의 전동성당은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화강암을 주춧돌로 한 붉은 벽돌들의 조합이
우리나라의 건축과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성당을 구성하는 벽돌의 일부는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다고 합니다.
나머지 석재와 목재들은 각각 익산의 채석장과
승암산의 목재를 사용하였다고 하는군요.
전동성당을 구경하고 다음으로 찾은 곳은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경기전이다.
한사람 분의 입장료(3,000원)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경기전을 찾은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홍살문
경기전 입구로 들어서면 홍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홍전문 또는 홍문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신성한 곳이므로
사악한 기운을 내쫓는 구실로 세운 문입니다.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태종10년 1410년에 창건되었답니다.
경내에는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본전과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공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
전주사고, 태실 등의 유적이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
예종대왕 태실(胎室) 및 비(碑)
전주사고(全州史庫)
전주사고(全州史庫)
1439년 설치된 조선왕조실록의 보관 장소다. 한양, 충주, 성주의 사고와 함께 한 권씩 보관하였다. 임진왜란으로 다른 사고의 실록이 모두 소실되었지만 전주사고의 실록은 손홍록이 내장산으로 옮겨 보관함으로써 지켜낼 수 있었다. 유일한 실록은 14개월 만에 조정에 전달되어 다시 한양,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의 사고에 보관되었다. 전주사고의 원본은 마니산에 보관되었다.
사고 내부의 전시물과 설명문을 보니
새삼 우리의 역사를 지켜내고자 하는
선인들의 각고의 노력들이 피부에 와 닿았네요.
어진박물관(御眞博物館).
어진박물관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어진 봉안 관련 유물을 영구 보관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입니다.
어진박물관을 둘러보고 다시 경기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중 바라본 풍경으로
전동성당과 한옥이 어우러진 모습이 환상적입니다.
경기전(慶基殿) 정문 앞에 하마비가 있는데
하마비는 말을 타고 들어갈 수 없고
내려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표지입니다.
경기전의 하마비는 다른 하마비들과 달리
암수 돌사자 두마리 조각이 받치고 있는 모습이 특이합니다.
한옥마을 곳곳에는 예쁜 한복대여점이 있어
한복차림의 젊은 여성들을 쉽게 볼 수가 있답니다.
한지사진을 전시, 판매하는
'지숨갤러리'를 찾아 작품을 구경하며
기념품도 몇 점 구입하고 사진촬영도 하는 등 시간을 보내다가
부근의 소문난 먹거리인 '길거리야 바게트버거를'를 구입 후
조선시대 전주의 남쪽 성문이었던 풍남문(豊南門)을 찾아갑니다.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풍남문'의 모습입니다.
전주 풍남문 (全州 豊南門) - 보물 제308호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3길에 위치한 풍남문은 조선 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성벽이 헐린 후 1734년에 영조의 명으로 개축되었고 176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다시 지으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주여행을 마치고 꼭 한번은 가고팠던 익산의 미륵사지를 찾았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미륵사지(사적 제150호)
미륵사지는 마한(馬韓)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기도 하는 금마면 용화산(龍華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다.
<삼국유사>기록에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 30대왕 600-641)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에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삼존을 위하여 전(금당), 탑, 낭무(화랑)을 세웠다고 한다. 이와 달리 미륵사의 창건에는 백제의 국력을 확장하기 위해 마한 세력의 중심이었던 금마에 미륵사를 세웠을 거라는 추측이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를 세우는 데에는 당시 백제의 건축·공예 등 각종 문화 수준이 최고도로 발휘됐을 것으로 짐작할 뿐만 아니라, 신라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 도와주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와 같이 당시 삼국의 기술이 집결되었을 것이다. 미륵사가 백제불교에서 미륵신앙의 구심점이었음은 분명하며, 신라최대의 가람인 황룡사가 화엄사상의 구심점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황룡사가 1탑 3금당식인 것과 달리 미륵사는 3탑 3금당식 가람배치이다. 황룡사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화엄사상, 미륵사는 미륵사상을 가람에 구현하고 있다. 미륵사는 일반평민 대중까지 용화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미륵신앙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2015년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은
해체, 복원중이어서 볼 수가 없었네요.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높이 14.24m.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석탑은 거의 전면이 붕괴되어 동북면 한귀퉁이의 6층까지만 남아있으나 본래는 9층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은 1974~1975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에 의하여 동쪽탑은 목탑이 아니라 석탑임이 밝혀져 이른바 동서 쌍탑의 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동탑은 그 뒤 발굴조사에 의해서 9층으로 확인되어 1993년에 9층(높이 27.67m)으로 복원되었다.
보물 제236호인 '미륵사 당간지주'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뜻으로
삼한시대 '솟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는데...
절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이곳에 깃발을 달아두었으며
주로 사찰 입구에 세워둔다고 합니다.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지주라 한답니다.
1993년에 복원된 동탑입니다.
1974년 동원 탑지를 발굴하여
그 기단의 규모와 형태 및 출토유물을 조사한 결과
현재 보수중인 국보 제11호 서탑과 같은
백제의 석탑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
1991년 복원을 시작하여 1992년 복원을 완료하였습니다.
미륵사지석탑(서탑) 해체 후 나온 탑 석재들.
천천히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싶었지만
먼길을 서둘러 가야하는 일정이라
수박 겉핥기식 관람이 될수 밖에 없는게 아쉬웠지만
훗날 다시 찾고픈 곳이어서 그때를 기약하기로 하고
서둘러 다음 행선지로 향합니다.
왕궁리유적 가는 길에 만난
'고도리석조여래입상(보물 제46호)'
'왕궁리유적전시관'
내부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통과하기로 합니다.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선정된 곳입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 - 익산왕궁리유적
백제역사유적지구가 2015년 7월 4일 대한민국 12번 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익산 2개소(왕궁리유적, 미륵사지),부여 4개소(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고분군, 정림삽지, 나성), 공주 2개소(공산성, 송산리고분군)입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백제유적지구 유산이 한국,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삼국 고대왕국들 사이의 상호 교류 역사를 잘 보여준다는 점과 백제의 내세관, 종교, 건축기술, 예술미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백제역사와 문화를 높이 평가하였다고 합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웅진시대부터 사비시대까지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 살았던 백제인들의 문명을 보여주는 곳으로, 익산 왕궁리 유적은 백제 후기 왕궁의 문명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사적 제408호인 익산 왕궁리는
예로부터 왕궁평, 왕검이, 왕금성으로 불려
고대 백제의 왕궁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이 지역의 유적은
백제의 왕궁이 있던 자리에 사찰이 들어선 곳으로 보이며
왕궁 유적과 사찰 유적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발굴 조사 결과 백제 무왕(600~641)때 왕궁으로 조성된 이후
백제 말에서 신라 초기에 사찰로 바뀐 것으로 추정됩니다.
왕궁리5층석탑(국보 제289호)
시간을 쪼개가며 한 군데라도 더 돌아보고파 점심도 이동하면서 먹으며 다녔지만 계획했던 곳을 마무리 하고보니 어느 새 오후 2시간 다 된 시각이다.
지금부터 포항까지 쉼없이 달려가 문상할 복장으로 갈아입고 다시 대구의 장례식장으로 가야하는 대장정이라 부지런히 운전을 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못 꿴다는 말이 있듯이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속도는 높혀 달리되 안전운전은 잊지말고 가기로 마음먹으며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락가락하는 빗줄기를 뚫고 고속도로에 올라서며 포항으로의 먼 길을 달려나간다. 조금은 피곤하지만 구경 한번 잘했다는 기분좋은 말을 남기면서...
'★ 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족과 함께 떠난 2박3일간의 강원도 나들이(둘째 날) (0) | 2017.08.27 |
---|---|
가족과 함께 떠난 2박3일간의 강원도 나들이(첫째날) (0) | 2017.08.26 |
벗들과 떠난 설악으로의 여정 그 이후... (0) | 2016.07.15 |
가슴속 염원으로만 남아있던 3대 관음기도 성지 낙가산 보문사... 그리고 전등사 (0) | 2016.07.05 |
2016년 의성 산수유축제를 다녀왔습니다. (0) | 2016.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