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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여유로운 마음으로 걸어본 영천 은해사 7암자 순례 산행 본문

◈ 산행이야기/☆ 2017년도 산행

여유로운 마음으로 걸어본 영천 은해사 7암자 순례 산행

해와달^^* 2017. 4. 10. 23:47

♧ 산행일자 : 2017. 04. 09 (일)   날씨 - 흐림

♧ 산행장소 : 경산시 와촌면, 영천시 청통면 일원

♧ 산행인원 : 집사람과 둘이서...

♧ 산행코스 : 은해사주차장-수림장-운부능선-운부암-태실봉능선-백흥암-중암암-묘봉암-은해능선-기기암-서운암-백련암-은해사-주차장

♧ 산행시간 및 거리 : 7시간40분, 16.32km(식사 및 휴식, 여유로운 사찰 구경 포함. GPS 기준)




◈ 산행기

오늘도 변함없이 산행준비를 하면서 몇 군데의 산행지를 놓고 행선지를 정하고 있던 중 날씨정보를 들여다보니 비소식에 그다지 좋은 날씨가 아닌 것 같아 조망이 멋진 곳은  포기를 하고 폭닥한 산길에 산행하면서 의미를 둘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하고 산행지를 고르기 시작한다.

해마다 석가탄신일 전후로 사찰 순례를 겸한 산행을 해오곤 했었는데 이 참에 일정을 좀 당겨서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선택을 한게 영천에 있는 은해사의 산내암자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동안 두 세번 가량 몇 군데씩 찾아본 경험은 있지만 한꺼번에 다 둘러본 경우는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한번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집사람과 아침을 챙겨먹고 집을 나서 김밥과 만두를 사서 갈무리하고 대구-포항간 고속도로를 달려 청통,와촌IC를 빠져나와 은해사를 향해 달려간다.

은해사에는 부속암자로는 거조암, 백흥암, 운부암, 백련암, 묘봉암, 중암암, 기기암, 서운암 등 8개의 암자가 있는데 거조암은 제법 떨어진 거리에 있어 이번 순례산행에는 빠지게 되고 나머지 7개 암자들을 둘러볼 생각이다. 훗날 거조암까지 포함해서 8개 암자 전부를 돌아볼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잠시 미뤄두고 도착한 은해사 입구의 널찍한 주차장에 당도하니 휴일이지만 흐린 날씨에 약간은 쌀쌀한 기온탓인지 주차된 차량들이 그리 많아 보이질 않는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배낭을 들쳐메고 주차장 입구에 있던 치일교를 건너며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궤적



은해사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면



곧바로 치일교를 건너게 되고 정면으로 보이는

교통표지판 옆으로 나있는 골목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다닥냉이'



들어선 골목길을 잠시 따르면

치일저수지 제방 입구 좌측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완연한 봄이 찾아왔음을 알려주는 '조팝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네요.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잠시 걸어가면



좌측으로 '벽진이씨'묘가 있는 무덤군을 만나게 되는데,

무덤 뒤로 나있는 등로를 따르면 운부능선으로 연결이 됩니다.



짧은 대나무 숲길을 빠져나와 부드러운 산길을 걷다보면



은해사의 영역인듯 목책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누군가 떼어버린 모양이라 뚫려 있네요.



야트막한 봉우리 하나를 올라서면

은해사에서 조성, 운영되고 있는 수림장(樹林葬)을 만나게 됩니다.


수림장은 화장한 유골을 나무 아래에 묻어

나무, 숲과 함께 영생하도록 한다는 자연친화적 장묘형태입니다.



은해사 일주문 앞에 조성되어 잇는 은해사공원 전경입니다.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던 겨울산의 모습에서 벗어나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생동감 넘치는

봄이 찾아온 숲길을 걷노라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네요.



은해사 경내를 지나 운부암과 백흥암으로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신일저수지로 내려갈 수 있는 사거리 갈림길입니다.



진달래도 이제 끝물로 접어드는 듯 꽃이 지고 잎이 나기 시작하는군요.





아직은 온통 회색빛이 지배하고 있는 이른 봄숲이지만

화사한 진달래의 붉은 빛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안부갈림길



'제비꽃'



봄의 한가운데서 아름다운 꽃길과 초록 숲길을 만나는 이 시간만큼은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갈림길입니다.

좌측길은 백흥암으로 가는 길인 것 같고,

가야할 방향은 우측 시그널이 반겨주는 능선길입니다.



팔공산의 넓디 넓은 마루금이나

골짝을 가도 만나게 되는 친숙한 시그널...

오늘도 마음속으로 반가운 인사부터 건네봅니다.



잡풀이라곤 하나없는 온통 황토만 있는 곳에 자리잡은 무명묘를 지나

 

 

능선 좌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면

 

 

눈길을 끄는 큼직한 바윗길이 나타나면서 등로는 잠시 가팔라집니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조망터에서 주변을 돌아보지만

흐린 날씨 탓에 먼곳 까지는 보이질 않네요.

 

골짝에 자리를 잡고 있는 마을은 청통면 신원리의 안신원마을이고

건너편 능선은 코끼리바위로 연결되는 유봉지맥입니다.

 

 

이른 봄 노랗게 피어나 봄이 왔음을 알려주던

'생강나무꽃'에도 이제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는군요.

 

 

조망터를 지나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갈림길로 주의해야 할 곳입니다.

 

계속되는 길을 따르면 운부능선을 따라

팔공산 주능선의 운부봉으로 연결이 되고

좌측 아래로 내려서는 길이 운부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내려가면 소류지가 있는 차도와 만나게 되고

 

 

'머위꽃'

 


사계절 관계없이 어느 때 찾아와도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운부암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운부암이 자리한 이곳은 금강산 마하연과 함께

한반도 삼천리에서 가장 길한 자리라고 합니다.

그러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지요.


 

제일 먼저 큰 법당인 원통전을 찾아 주불로 모셔놓은

관음보살 부처님께 향을 올리고 삼배로써 예를 올립니다.

오늘 산행의 무사함과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운부암 중심인 원통전.


다소 초라해 보이기까지한 일부만 남은

 석탑이 마당을 지키고 있네요.





운부암(雲浮庵)

조계종 은해사의 산내 암자인 운부암은 711년(신라 성덕왕 10)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절을 지을 때 상서러운 구름이 일어났다 하여 운부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몇 차례의 화재로 인해 전소와 중건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당에 들어서자 이미 '문자'를 떠난 지 오래인 편액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운부난야(雲浮蘭若)', 문자로는 읽어낼 수 없는 공간이다. 운부암 선방의 당호다.

난야는 아란야(阿蘭若)의 준말로 적정처(寂靜處), 무쟁처(無諍處)를 뜻하며, 수행하기 적합한 곳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이곳 운부암은 많은 선지식이 거쳐 갔다. 경허, 만공 스님으로부터 용산, 운봉, 경봉, 향곡, 한암, 팔봉, 청담, 성철 스님 등 많은 선지식들이 정진했다.

특히 성철(性徹;1912~1993) 스님과 향곡(香谷;1912~1978) 스님은 이곳에서 만나 평생 도반이 됐다.

 


운부암의 누각인 보화루(寶華樓)




보화루(寶華樓)

금은 보화를 품고 있는듯한 이름이지만 색바랜 옛모습 뿐이다. 화려한 단청은 사라지고 처마엔 세월이 들러붙어 있다.

어느 사찰에서나 처럼 누각이 부처님의 터를 호위무사처럼 가로막고 있다.

누각인 보화루는 1862년 원통전과 함께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운부암중건기'와 <조선사찰사료>에 나와 있는데 현존하는 건물은 1900년에 중건된 것이다. 보화루라는 이름은 화엄학(華嚴學) 또는 화엄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은해사와 말사 암자인 백흥암과 군위지보사에도 보화루라는 누각이 있다.



파란 하늘을 품은 연못 위에는

따뜻하고 오래된 눈동자의 달마 스님이 서 있습니다.


형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원하지 못한게 구름...

인간의 욕망도 구름과 같습니다.


"구름이 비가되어 내리듯

덧없는 욕망을 쫓는데 허비하지 말고

스스로 불성을 깨치라"고

말없이 가르침을 전하는 암자.

운부암(雲浮庵)...


팔공산 자락에 운부암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운부암을 나와 은해사를 향한 도로를 따르다

경쾌하게 들려오는 물소리에 잠시 계곡으로 내려서 봅니다.

 

 

'산괴불주머니'

 

 

도로 우측으로 급히 꺾이는 산길로 들어서면

 

 

개울을 건너 계속되는 산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백흥암으로 가는 길이지요.

 

 

'알록제비꽃'

 

 

편안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면 인적이라곤 없는

산길에도 봄의 정취는 물씬 풍겨납니다.

 

 

 

 

태실봉능선의 갈림길인 운부고개에 올라서게 됩니다.

좌측의 철조망 아래로 내려가면 백흥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 백흥암, ↑ 중암암, 느패재(능성재), → 운부암, ↓ 은해사)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면

백흥암의 뒷담으로 내려서게 되고

담장따라 나있는 길을 따라가면


 

청정도량 백흥암의 보화루(寶華樓)가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반겨줍니다.



백흥암은 연중 초파일과 백중날에만 개방하는 비구니 선방이며

계율과 수행이 엄격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암자입니다.


그동안 딱 한번 경내로 들어가 보았는데

옛모습이 잘 보존된 사찰이었답니다.


특히 법당인 극락전 안에는 부처님 좌대인 수미단은

조선시대 최고의 목조각 작품으로(보물 제486호) 유명하답니다.




백흥암

사기(史記)에 의하면 이 절은 혜철(惠徹)국사께서 861년(경문왕 1년)에 착공하여 873년에 완공하였으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송지사(松旨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546년(명종 1)에 백흥암으로 개칭하였고, 1651년(효종 2)에 중건하였으며, 1677년(숙종 3)에 중수하였다. 1730년(영조 6)에는 보화루(寶華樓)를 중건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청봉이 영산전(靈山殿)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한때 수백 명이 수도하였다고 하며, 규모도 암자로서는 매우 큰 편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영산전·명부전(冥府殿)·문루(門樓)·산신각(山神閣)·선실(禪室)·원주실(院主室)·요사 등이 있다. 백흥암에는 보물 제790호 극락전(極樂殿)과 보물 제486호 극락전 수미단(須彌壇)이 있다.
 


백흥암 입구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산수유'.


올해도 의성 산수유축제라도 다녀와야 할까 봅니다.



백흥암 입구의 화장실 옆으로 나있는 등로를 따라

중암암을 향해 진행해 나갑니다.



'연복초(連福草)'



'잔털제비꽃'



백흥암 뒤쪽의 대숲을 지나 등로를 잇다가

잠시 길을 벗어나 백흥암 방향으로 다가서면



철망 너머로 백흥암의 전체 전경을 담을 수 있네요.

암자 치고는 꽤 큰 규모입니다.



중암암을 향해 등산로를 따라 10분 가량 걸으면



태실봉에서 이어져 온 주등로와 합류가 되고



야자매트가 깔려있는 편안한 산길을 따라 부지런히 발놀림을 해 나갑니다.



모처럼 찾은 산길은 전보다 훨씬 걷기에 편해져 있네요.



전에 없던 계단길이나 야자매트가 깔린 길이...



그리고 가팔라서 오르기 수월하지 않았던 곳에는

번듯한 목재계단길이 조성되어져 있어 누구든 쉽게

산을 찾을 수 있게 해놓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이제 중암암의 상단부에 있는 삼인암에 다 온듯 합니다.



커다란 바위 세 개가 멋지게 이어져 있는 곳에 닿게 되는데,

첫 번째 바위에 음각으로

커다랗게 삼인암(三印岩)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의 너른 바위에 퍼질러 앉아

준비해간 김밥과 만두로 점심시간을 가져봅니다.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딱 붙어 있는 커다란 두개의 바위 틈새를

배낭을 벗어 두손 높이 들고 통과하면 만년송을 만나게 됩니다.


사진으로는 정말 실감나지 않는데 실제로 보면

아주 멋진 곳이라는 사실 이내 깨닫게 됩니다.


 

두 개의 바위틈 사이로 내린 뿌리가 엄청나구요.

나무도 상당히 수령이 있어 보이면서

기품이 넘치는 소나무입니다.

 


만년송에서 바라본 코끼리바위 능선.


 

 


중암암 극락굴.


화엄굴이라고도 하며

김유신 장군의 설화가 깃든 곳입니다.


암튼 일단 들어가면 앞쪽의 좁은 틈으로

빠져 나가야 하는 불안감이 확.. 드는데

다행히 중간쯤에서 우측으로 바위틈이 있고

몸 하나는 빠질만한 공간이 있는데

이곳을 나오면 바로 중암암 위 석탑을 만나게 됩니다.


 

극락굴을 나오면 만나는 삼층석탑.

고려시대 탑으로서 경북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석등에서 바라본 세계... 에고!


 

중암으로 들어가는 바위 구멍입니다.

자연석이 서로 맞대고 있는 아주 멋진 일주문이라 할수 있지요.

 

 

깔끔한 모습으로 재탄생한 중암암의 대웅전입니다.

 

 


중암암(中巖庵) 

산사를 찾다 보면 정말 기상천외한 곳에 자리한 산사에 입이 벌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대구의 진산인 팔공산에 있는, 일명 돌구멍 절로 알려진 중암암(中巖庵)이 그런 산사 중의 하나다. 돌구멍을 통하여 절을 드나들게 되어있고, 우리 나라에서는 제일 깊다는 해우소(화장실)와 보일러실도 돌구멍 속에 있다. 뿐만 아니라 돌구멍 구멍들이 이런 저런 용도로 활용되고 있으니 제격에 딱 어울리는 절 이름이다. 이런 절, 보는 것만으로도 입을 벌리게 하는 절들은 그 규모가 어찌 되었건 찾아가 보는 것만으로도 산사 찾는 맛을 더해 준다.

중암암은 은해사 산내 말사다. 은해사 일주문을 통하여 4Km쯤 들어가야 갈 수 있는 중암암은 은해사의 산내암자로서 신라시대 화쟁국사 원효(元曉)스님 (617~686)께서 토굴을 짓고 정진한 곳으로 널리 전해진 곳에 신라 광덕왕 (光德王) 9년 (서기 834년)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다. '중암암'이라는 이름보다는 한문을 풀어 말하는, 일명 돌구멍절로 더 알려진 조그만 암자다.

 




중암암을 내려와 차도를 따르면 우측의 계곡 아래로

연등과 시그널이 달려있는 방향이 묘봉암가는 길입니다.



'현호색'


 

잠시 등로를 따르면 삼거리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좌측으로 시그널이 많이 달려 있지만

우측의 골짝으로 진행해 보기로 합니다.

잠시 후 알게 되었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네요.

 


조금 전 갈림길에서 좌측의 등로를 따르면

바로 도착할 수 있는 중암암전망터를 빙~ 돌아서 왔으니 말입니다.

 

 

여태껏 한번도 보지 못했고 그토록 보고팠던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중암암의 원경입니다.

우리나라 3대 기암(奇庵) 중의 하나인 곳이죠.

 

참고로 3대 기암은

관악산 연주대, 금오산 약사암, 팔공산 중암암입니다.


 

이어서 산구비를 돌아돌아 도착한 묘봉암입니다.

 

 

묘봉암(妙峰庵)

묘봉암은 833년(흥덕왕 8)에 심지(心地)왕사께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오랫동안 관음기도처와 수행처로 전승되어 오다가 1485년(성종 16)에 죽청(竹淸)과 의찬(義贊)이 중창하였고 1780년(정조 4)에 다시 중창하였으며, 최근에 6·25사변 당시 폐사된 것을 법운(法雲)스님께서 중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관음기도와 신신기도처로 유명하고 과거에는 나라에 큰일이 있거나 큰 절에 행사가 있을 때에는 은해사 대중스님들이 모두 올라오셔서 산신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지며, 산령각 옆 석간수는 불치의 병도 낳게한다는 신비의 약수로 유명하다.

원통전은 과거 석굴에서 기도를 해왔던 곳으로 석굴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높이가 매우 높아 정사각형의 모양에 가까운데 이는 내부에 큰 돌이 뻗어 있어 그 아래에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하고, 왼쪽 위에 2층을 만들어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기 때문이다.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기도 하다.

 

 

건물 뒤쪽의 바위가 건물을 치고 있는데

원통전을 지을 때 이 바위를 비껴 짓지않고 껴안아 지은 탓에

원통전 내부에는 이렇게 커다란 바위가

법당 안에 턱 하니 자리하고 있답니다.

 

 

묘봉암 앞에 서면 전방이 탁 트여 시원한 느낌입니다.

은해사 부속 8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한 명당으로 알려져 있지요.

 

골짝 아래로 백흥암이 보이는군요.

 

 

묘봉암 석탑 뒤로 나있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면 은해능선으로 연결이 되고

 

 

중간중간 나타나는 묘봉암, 중암암과

경산갓바위 주차장 갈림길을 지나치기도 합니다.

 

 

 

 

조망바위에서...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환성산(우측)과 무학산 능선

 

 

갓바위부처님이 계신 관봉(우측)과

그 좌측으로 용주사도 눈에 들어오네요.

 

 

 

 

낯익은 곳이 나타나네요.

예전 이곳에서 우측 629봉을 거쳐

은해능선 끝자락을 따라 은해사로 내려선 적이 있었지요.

기기암으로 가려면 좌측 방향이지만

삼각점이 있는 629봉을 다녀오기로 합니다.

 

 

삼각점 하나 덩그러니 앉아있는 629봉을 찍고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 갑니다.

 

 

눈길을 끄는 커다란 소나무에서 잠시 포즈를 잡아보고

 

 

일시적으로 빠져나온 숲길 끝에는

조망이 트이는 마사토지역을 만나게 되고

이어 우측으로 희미한 갈림길이 있어

지도를 보니 기기암으로 내려서는 길이었네요.

 

기기암을 들렀다가 멀리 바위群이 있는

능선으로 다시 올라오게 됩니다.

 

 

희미한 옛길을 따라 등로는 이어지다가

계곡으로 접어들게 되면서 등로는 쏟아지는군요.

내려선 계곡길에서 두껍게 깔린 낙엽을 헤치며 걷다보면

 

 

새로이 불사를 일으켜 법당을 새로이 짓고 있어

어수선한 분위기의 기기암(寄寄庵)에 도착하게 됩니다.

공사 중인 현장을 담기가 뭣해 요사체만 사진에 담고

 

 

담장이 둘러쳐진 선방을 앞에 두고

화사하게 피어난 목련을 담아봅니다.

 

한때 안흥사로 불리던 기기암(寄寄庵)...

'신기사바 심기극락(身寄娑婆 心寄極樂)'이라고 하여

'몸은 비록 사바세계에 있으나

마음은 극락에 있다'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는군요.

 

 

 

기기암(寄寄庵)

은해사골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이 암자는 팔공산에 많은 절이 창건되고 마애불상이 집중되어 불교 성지로 변하는 시기인 9세기에 조성된 절 가운데 창건 연대가 가장 빠르고 실제 기록도 남아있는 사찰이다.

이 사찰은 애장왕때 국사로 봉안된 정수(正秀)스님이 816년(헌덕왕 8)에 국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하면서 안덕사(안덕사) 또는 안흥사(安興寺)라고 하였으나, 고려 명종 16년(1186년) 기성(기성)대사가 머물면서 사찰 이름을 '기기암'으로 바꿔 불렀다고 하는데 당시 이 사찰에는 60여 명의 승려가 살았다고 합니다.

1546년에는 쾌선스님이 중건하였고 다시 1823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당우로는 요사와 법당을 겸한 건물 1동이 있으며 선방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에 팔작지붕 건물로 근래에 조성되었습니다.

이 암자는 '신기사바 심기극락(身寄娑婆 心寄極樂)'이라하여 '몸은 비록 사바세계에 있으나 마음은 극락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편안한 수행처인데 현재 선방에는 비구스님들이 참선 정진 중입니다.

 


'황새냉이'


 

기기암 표석 우측으로 나있는 등로를 따라

다시 주능선을 향해 걸음을 이어갑니다.

 

 

솔가리가 잔뜩 깔려 있어 마치 푹신한 솜이불을 밟는

느낌을 주는 짧은 가파름을 극복하고 나면

 

 

629봉 직전의 갈림길에서 이어져 온 능선길과 재회를 하게 됩니다.

 

 

 

 

빨간 입술을 바른 진달래가 유혹을 하는 짧은 바위군락을 올라서면

 

 

등로 우측으로 기기암이 내려다보이는 조망바위에서 다시금 기기암을 바라보고

 

 

느긋한 산행 덕에 너무 많이 지체가 되어버린 산길을 부지런히 걸어갑니다.

 

 

일조량이 많은 따뜻한 남쪽 능선이어서 그런지

철쭉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초록빛 잎사귀가 돋아나는 끝물의 진달래가 도열해 있는

산길을 따라 쉼없이 발놀림을 하며 내려선 끝에 만난 도로에서

서운암을 찾아가기 위해 거꾸로 기기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도착한 서운암에는 법당과 요사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기기암과 마찬가지로 공사판이 벌어져 있더군요.

 

 

 

서운암(瑞雲庵)

서운암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전해지는 사찰 기록이 전혀 없다. 폐사로 남아 있었으나 6.25이후 중건하여 한 분의 스님이 거처하고 있었다. 산령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자그마한 전각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창호는 빗살문살로 짜여져 있으며 안에는 산신상(山神像)만을 봉안하고 있다.

산신은 민간신앙으로 호랑이의 변화신인 산신(山神)을 숭배하던 것을 불교에서 흡수한 경우이다. 산신각은 보통 산의 악귀를 누르기 위하여 가람의 가장 위쪽에 위치한다.

정면 4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서운암의 스님들이 머무시던 요사를 겸한 법당은 지금은 다 철거가 되고 새로이 지으려는 듯 공사가 진행중이다.

 

 

 

 

은해사 입구의 갈림길에서 좌측의 백련암을 찾아갑니다.

 


백련암 주변에는 화사한 꽃들이 만발해 화원을 이루고 있네요.



'만첩홍매화'


 

'명자나무'

 




백련암

일제말 항일학생운동의 본거지이자 대구 능인 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오산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자연석을 쌓아 축대를 만든 이후에 초석을 두어 기둥을 세운 정면 7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이며, 근래에 조성되었다. 처마 밑에는 2개의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백련암에는 현재 삼국유사와 일연스님의 사상을 연구하고 그에 따른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일연학연구원이 자리하고 있다.

 



 

 

 

'봄맞이꽃'

 


은해사의 큰 법당인 극락보전.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셔놓은 전각입니다.




영천 은해사(銀海寺)

영천 은해사(銀海寺)는 신라 헌덕왕 1년(809년)에 혜철국사(惠哲國師)가 창건한 사찰로 전국 31본산(本山)의 하나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이다.

헌덕왕은 조카인 40대 애장왕을 폐위시키고 즉위했다. 당시 정쟁의 피바람 속에서 숨진 원혼을 달래며 왕의 참회를 돕고, 나아가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서 창건한 사찰이 은해사의 시초가 되는 해안사(海眼寺)다.

해안사로 불린 은해사는 그후 1264년 고려 원종 때 홍진국사가 중창·확장했다. 1545년 조선 인종 때 소실되어 1546년에 천교(天敎)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으며, 법당과 비석을 세워 인종의 태실(胎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칭했다.

1943년까지 은해사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운부암·거조암·기기암·백흥암·묘봉암·중암암·백련암·서운암 등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4호인 거조암 영산전, 보물 제486호인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 보물 제514호인 운부암 청동보살좌상, 보물 제790호인 백흥암 극락전 등이 있다. 이 밖에도 60여 점의 문화재가 있다.

국보인 거조암 영산전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지붕 건물로, 고려 말기에 건립됐다. 이 불전 안에 석가 삼존을 중앙에 모시고 사방 벽과 기둥으로 단을 만들어 총 526기의 석조 나한상을 봉안하고 있다.

또한 은해사의 편액인 '은해사' '대웅전' '보화루' '불광' '일로향각' 등 다섯 점의 추사 글씨는 은해사의 자랑이자 소중한 문화재이다. 추사는 경상감사로 부임한 생부 김노경 공을 따라 경상도 일원의 명승지를 여행하면서 은해사 일대도 들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해사는 본사와 말사 및 암자의 성보문화재를 수집해 도난과 훼손을 방지하고 보존·관리·전시하기 위해 성보박물관을 2004년 5월 개관했다.



아미타불을 모신 미타도량으로 유명한 은해사는

불, 보살 나한 등이 주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마당 한켠에는 450년된 거대한 향나무가 용솟음치듯 서있고

다가올 석가탄신일에 불을 밝힐 연등의 화려한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범종루와 벚꽃...


너무나 아름다운 정경에 연신 셔터를 눌러댑니다.



'금낭화'





은해사 보화루(寶華樓)



건물 이름 '보화(寶華)'는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불보살(佛菩薩)의 세계'이다.

보화(寶華)는 보배로운 꽃이니

곧 불세계(佛世界)인 불국토(佛國土)를 말하는 것이다.

이 누문을 통하여 불국토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은해사 부도전(浮屠殿)


수수하다 못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장식도 없고 작은 규모의 부도전.

그래서 오히려 편안하고 친근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남산제비꽃'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서로 엉켜붙어 있는 사랑나무(연리지)

 

수종이 서로 다른 나무들사이에

이렇게 한 몸체로 붙어있는 것은

좀처럼 발생하기 어려운 경우라 하는군요.

 


은해사 천왕문



은해공원의 상가지역을 지나 애마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산행을 준비하는 동안 소요시간이 6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히 마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한 암자순례길이 무려 1시간 이상 더 걸려 은해사 산문을 나서게 되었으니 팔공산 구석구석 명당자리 놓치지 않고 자리잡은 암자들의 분위기하며 범상치 않은 산세와 그리고 각 암자마다 각기 다른 특별한 고유의 분위기를 느끼며 하나하나 음미하듯 여유로운 발걸음이 되다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근처에 있는 같은 교구 본사인 대구의 동화사와 경주의 불국사에 비해 그 규모나 지명도에 있어서 현저히 떨어질지 모르지만 오히려 세속의 때가 덜 묻고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인데다 거느리고 있는 8개의 암자 하나하나가 모두 특색이 있고 역사성이 있는 암자들이라 계절을 달리하여 은해사를 찾아와도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산행을 겸한 순례길이다보니 각 암자의 진정한 멋을 깊게 음미할 수 있을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었음은 아쉬움으로 남는 것 같아 다시 기회를 봐서 이번 걸음에 못 보았던 숨은 보석들을 제대로 찾아보기로 내심 다짐해 본다. 또한 거조암까지 포함하는 8개 암자 순례산행도 결행에 옮겨볼 생각도 하면서 해거름이 찾아드는 은해사주차장을 빠져나와 대포고속국도를 달려 귀로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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