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부처님 오신 날에 다시 걸어본 통도사 산내 암자 순례 본문
♧ 산행일자 : 2018. 05. 22 (화)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 일원
♧ 산행인원 : 나홀로...
♧ 산행코스 : 통도사 신평버스터미널-영축산문 앞 주차장-관음암-축서암-축서암사거리-집수조-비로암-극락암(공양)-반야암-서축암-금수암-자장암-사명암-백련암-옥련암-서운암-수도암-안양암-취운암-보타암-통도사-영축산문-신평버스터미널
♧ 산행시간 및 거리 : 6시간42분, 17.42km (식사 및 휴식 포함, GPS기준)
◈ 산행기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큰 절의 산내 암자들을 순례하는 일을 몇 년째 해오고 있던 터라 올해도 어김없이 순례길을 떠나기로 합니다.
집사람과 함께 하고 싶지만 오어사 법회 행사와 공양봉사가 있어 부득이 홀로 가는 순례길이 되어 버렸네요.
처음 계획했던 순례길은 통도사 산문 내에 위치하고 있는 15개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백운암을 제외하고 14개 암자를 돌아보는 것으로 잡았지만 결국에는 산문 바깥에 있는 2개 암자를 추가로 총 16개 암자를 거쳐오게 되었답니다.
4년 전 부처님 오신 날 전체 19개 암자를 돌아 본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는 조금 늦게 시작하는 관계로 줄여서 돌아보기로 하고 이미 걸어본 코스이기에 자신감 충만한 상태로 순례길을 시작합니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35번 국도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하는 정체현상은 쉽사리 풀리지 않아 골목골목을 찾아가며 영축산문 입구의 주차장을 찾아가려 하지만 곳곳마다 막히는건 매 한가지네요. 이러다 길바닥에서 시간 다 보내겠다 싶어 신평버스터미널 부근의 이면도로를 찾아 주차를 해놓고 지산마을행 마을버스를 타려고 터미널로 걸어갑니다. 도로가 꽉 막혀있으니 마을버스 또한 언제 올지 기약이 없으니 차라리 걷는게 빠를거라는 터미널 관계자의 얘기를 듣고 터미널을 들,날머리로 삼아 GPS를 가동하며 지산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통도사 암자순례 궤적
통도사 신평버스터미널에서 순례길을 시작합니다.
멀리 보이는 영축산문에서 순례길을 시작하려 했지만
꽉 막힌 도로사정으로 부득이 변경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네요.
영축산문 앞 주차장을 가로질러
대영파크맨션 옆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지산마을을 향해 진행하다
계획에 없던 관음암도 찾아보기로 합니다.
'자주달개비'
자광전(慈光殿)과 5층 사리석탑
♣ 관음암(觀音庵)
통도사 울타리 밖에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관음기도 도량으로, 30여 년 전 승려 태응이 창건하였다. 원래 대처승의 가족들이 모여 살던 사하촌이었으나 신도들과 함께 집과 주변의 논밭을 매입하여 현재의 암자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인 자광전(慈光殿) 앞에는 석등과 돌난간을 두른 5층 사리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석탑에는 미얀마에서 온 부처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다.
관음암을 빠져나와 다시 합류가 된 도로를 따르면
지산마을회관이 있는 삼거리에 서게 되는데 진행방향은 좌측입니다.
영축산 정상부의 독수리바위가 우뚝한 모습으로 다가오는군요.
잠시 후 만나게 되는 평산마을 갈림길...
가야할 방향은 맞은편 축서암 방향입니다.
보문암(普門庵)
오늘은 먼 발치서 사진 한장 담고 지나치기로 합니다.
♣ 보문암(普門庵)
보문암은 길에서 보면 마치 옛날 양반 대갓집을 연상케 하듯 우뚝 솟아 있다. 입구에는 연꽃 연못이 있고 건물은 한 동이다.
보문암은 개인 법당으로 경남 의령이 속가인 덕봉스님이 1992년 창건하였다. 통도사 직할 암자에 포함되지 않지만, 산문 밖 암자로서 관음암, 보문암, 무량암, 축서암이 있다. 월하스님이 쓴 '보문암' 현판이 걸려있다.
무량암(無量庵)
4년 전에는 적막강산이더니 오늘은 독경소리가 들려오네요.
♣ 무량암(無量庵)
외부에서 보면 사찰이라기보다 기와집으로 된 일반 가정집처럼 보인다. 사찰 건물은 법당과 승려가 거주하는 거처로 이루어져 있는데, '一'자형 건물 중간에 법당 입구가 솟을대문처럼 돌출되어 있다. 법당인 ‘무량수전(無量壽殿)’에는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법당 현판은 승려 월하가 썼다. 암주는 승려 관우이다.
지산마을 입구 삼거리
애초 계획은 통도사 지산초소가 있는 지산마을버스 종점에서
반야암부터 들러 극락암을 거쳐 비로암으로 향할 계획이었지만
축서암 안내판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변하게 되는군요.
한동안 찾지 않은 때문인지 불현듯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임없이 우측 오르막으로 길을 들게 됩니다.
오름길 끝에는 지산마을경로당이 자리하고 있고
문수원 갈림길을 지나 축서암을 오르는 시멘트길을 거슬러 오르면
예전부터 몸에 좋다고 소문이 나있는
'컴프리'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네요.
봉축 법요식 준비가 한창인지
모든 분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축서암'에 당도하게 됩니다.
못 와본 사이에 말끔하게
새롭게 지어진 법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행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빠져 나옵니다.
♣ 축서암(鷲棲庵)
통도사의 울타리 밖에 있는 4곳의 암자(관음암,보문암,무량암,축서암) 중 하나이다. 통도사에서 북서쪽으로 3㎞ 떨어진 지점에 있다. 1711년(숙종 37) 창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863년(철종 14) 중수한 것이라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사찰 명은 영축산의 옛 이름이 '축서산'이어서 옛 산이름을 회상하여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절은 남향으로 세워져 햇볕이 잘 들고 주위가 평평하여 편안한 느낌을 준다. 선화가(禪家)로 유명한 승려 수안(秀眼)이 주지로 있으며,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법인 ‘자비원’을 운영하고 있다. 절 중에 된장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축서암을 나와 숲속으로 들어가면
지산마을에서 이어져온 등로를 만나게 되고,
사거리갈림목인 '축서암서거리'에서 비로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우측 방향은 영축산 취서산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축서암에서 비로암으로 가는 숲길은
송림이 우거진 아늑한 오솔길이라 걷기에는
통도사에서 가장 멋진 곳이 아닐까 싶네요.
축서암을 떠난지 15분 가량 지나 만나게 되는 집수조.
반야암능선 갈림길을 지나 산허리길을 돌아나가면
일주문과 사천왕문 역할을 하는
여시문(如是門)이 서있는 비로암에 닿게 됩니다.
참고로 여시문(如是門)은
여시아문(如是我聞)에서 유래되었으며,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뜻으로,
經文(경문)의 첫머리에 쓰는 말이라 합니다.
비로암에서 바라본 정각산(좌)과 천성산.
봉축 법요식이 진행중이라 멀찌감치 떨어져
사진 한장 담고서 비로암을 빠져 나갑니다.
♣ 비로암(毘盧庵)
극락암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1345년(고려 충목왕 원년) 승려 영숙(靈淑)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578년(선조11) 태흠대사가 중건하였고 그 뒤의 중건, 중수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법당에는 비로나자불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고 법당 앞에는 삼층석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다. 다른 암자와는 달리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 형태인 '북극전'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 있는 ‘칠성탱화’의 진본은 국보급 문화재로 인정받아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극락암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1345년(고려 충목왕 원년) 승려 영숙(靈淑)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578년(선조11) 태흠대사가 중건하였고 그 뒤의 중건, 중수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법당에는 비로나자불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고 법당 앞에는 삼층석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다. 다른 암자와는 달리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 형태인 '북극전'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 있는 ‘칠성탱화’의 진본은 국보급 문화재로 인정받아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로암을 나와 포장길을 따르다 활수교를 지나면
백운암에서 내려온 삼거리를 만나게 되고
무슨 심사가 틀렸는지 배배꼬인 소나무를 지나
푸른 연잎이 연못을 뒤덮고 있는 통도팔경 중의 하나인
극락영지(極樂影池)가 있는 극락암에 당도하게 됩니다.
통도팔경
제 1경 : 무풍한송(舞風寒松) - 영축산문에서 일주문까지의 소나무 숲길
제 2경 : 취운모종(翠雲暮鐘) - 취운암의 저녁종소리
제 3경 : 안양동대(安養東臺) - 일출시 안양암에서 보이는 큰절 쪽 경관
제 4경 : 자장동천(慈藏洞天) - 자장암 계곡의 소(소)가 달빛을 받는 광경
제 5경 : 극락영지(極樂影池) - 영축산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극락암 영지
제 6경 : 비로폭포(毘盧瀑布) - 비로암 서쪽의 폭포
제 7경 : 백운명고(白雲鳴鼓) - 백운암의 북소리
제 8경 : 단성낙조(丹城落照) - 단조성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
극락암은 경봉스님이 먼저 떠올리게 하는
한국 근대불교의 선맥을 이은 도량으로
통도사 산내 암자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지요.
♣ 극락암(極樂菴)
1332년(고려 충혜왕 2)에 창건되었다. 창건 후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1758년(조선 영조 34)에 철홍대사(智弘大師)가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전할 뿐이다. 이 암자에는 극락선원(極樂禪院)이 있어서 늘 많은 수행승이 머물고 있다.
특히 1953년 11월 경봉(鏡峰)이 조실(祖室)로 온 뒤부터 많은 수행승들이 몰려들자 1968년에 선원을 9동 104칸으로 늘려 지었다. 1973년부터 매달 첫째주 일요일마다 정기법회를 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주법당인 극락암과 연수당·정수보각·조사각·수세전·영월루 삼소굴(三笑窟)·여시문 등이 있다. 이 중 삼소굴은 경봉이 1982년까지 거처하던 곳이다. 조사각에는 석가모니불과 33조사, 보조국사 지눌, 보우(普愚) 등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암자 입구에 있는 극락영지(極樂影池)는 영취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홍교(虹橋)가 가로놓여 있다. 암자 약 500m 아래에는 아란야(阿蘭若)라는 수행도량이 있다.
아직 11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극락암에서의 공양을 맛보고 싶어
봉사활동하는 보살님들이 맛나게 구워준 부침개와 비빔밥,
그리고 수박 두어 조각으로 푸짐한 점심시간을 가져봅니다.
'작약'
맛난 공양을 느긋하게 마치고 설거지까지 말끔히 해치우고
극락암을 나와 비로암 방향의 포장길을 따라 조금 오르다보면
오른쪽의 솔숲으로 작은 소롯길이 나타나고
그 길을 따라 계곡 방향으로 내려서면 반야암으로 내려서게 됩니다.
반야암의 큰법당인 '반야보전'에는 봉축 법요식이 진행중입니다.
♣ 반야암(般若庵)
백운암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으로 난 골짜기 끝에 자리잡고 있다. 1999년 승려 지안이 창건하였다.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경내에는 법당인 반야보전(般若寶殿), 청향정(淸香亭), 세진정(洗塵亭)이 들어서 있다. 반야보전 현판은 승려 지안이 썼으며 내부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수행도량으로서 매주 일요일 가족법회가 열리며 여름방학 기간에는 큰 규모의 하기수련회가 열린다.
반야암을 빠져나와 도로를 따라 10분 가량 진행하면
극락암 갈림삼거리에 서게 됩니다.
통도사 방면으로 잠시 걸음을 옮기다
비포장의 우측 지름길로 진행하게 되면
자그마한 연못을 만나게 되는데 앙증맞은 모습의 연꽃들이
구경나온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네요.
연못 우측으로 길을 들어 서축암 방향으로 진행하면
계곡을 건너게 되고 서축암 뒷쪽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서축암(西鷲庵)
대문을 들어서면 무량수전까지 가는 가운데 길 옆으로는
'법성게'를 천에다 인쇄하여 세워 놓았습니다.
♣ 서축암(西鷲庵)
자장암으로부터 150m 정도 떨어진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1996년 수련화보살과 승려 월하, 원행이 정성을 모아 창건하였다. 경내에는 인법당((因法堂: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절) 형식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유명한 다보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으며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다. 승려 및 재가 불자들을 위한 산스크리트 강좌도 개설되어 있다.
영축산 능선의 품 안에 아늑하게 자리한 서축암에
불국사의 다보탑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 생경스럽게 보이는군요.
'끈끈이대나물'
'찔레꽃'
자장암과 금수암 갈림길.
우측방향의 금수암부터 다녀온 뒤 자장암으로 갈 예정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금수암.
수행도량이라 출입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 금수암(金水庵)
세심교를 지나 자장암으로 가는 길에 있다. 수행도량이어서 보통 때는 철문으로 닫혀 있으며 인적이 없어 조용하다. 철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사찰 입구가 나온다.
정갈한 경내에는 법당과 팔각정자, 석탑, 석등 등이 배치되어 있고 마당은 아름다운 조경수들과 잔디로 장식되어 있다.
법당은 5칸 규모의 건물로서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 앞에는 다양한 석물이 세워져 있다. 팔각정자는 유리문으로 둘러져 있어 안에 있으면 금수암 경내 전체를 살펴볼 수 있다.
'어성초'
'초롱꽃'
금와교를 건너 자장암으로 가는 도중 바라본 영축능선.
통도사 산내암자 중 가장 찾는 이가 많은
암자 중 하나인 자장암입구입니다.
계단 꼭대기에 있던 원통문이
아래쪽으로 이전 설치되어 있네요.
원통문(圓通門)이 있던 자리에는 석문이 자리하고 있고
무슨 상념이 그리도 많은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네요.^^*
자장암에서 바라본 영축능선.
♣ 자장암(慈藏庵)
신라 진평왕때 승려 자장(慈藏, 590∼658)이 이 바위벽 아래에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었다고 하며, 나중에 회봉(檜峰)이 다시 지었다고 한다. 1870년(고종 7)에 중수하고 1963년 용복(龍福)이 다시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법당, 요사채, 자장전 등 총 5동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법당은 4칸 규모로서 사람이 겨우 거처할 수 있는 작은 인법당(因法堂: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절)이며, 자장전에는 자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상을 모시는 4칸의 관음전(觀音殿)이 있다.
관음전은 거북바위 위에 전각을 올린 모양이다. 관음전 앞에는 거북의 꼬리, 관음전 뒤에는 거북의 머리, 법당 안에는 거북의 몸통 부분 일부를 드러내고 있다. 왼쪽에 자장율사의 초상화를 보관한 자장전(慈藏殿)과 부처를 모시는 수세전(壽世殿)이 있다. 자장전 앞에는 1896년 조성한 높이 약 4m의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마애불의 중앙에는 아미타불좌상이 그 좌우에는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새겨져 있다. 자장전 뒤에는 부처의 진신사리탑이 있다. 법당 오른쪽으로는 요사채가 있으며 자장전 옆에 취현루(醉玄樓)가 있다.
법당 뒤쪽에 있는 바위벽에는 자장이 신통력으로 뚫었다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작은 구멍이 있다. 자장이 수도하고 있을 때 2마리의 개구리가 곁에서 떠나지 않자, 신통력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개구리들을 들어가게 했는데, 그 뒤 1 쌍의 금개구리, 또는 벌과 나비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장암 마애불
관음전과 자장전 사이에 있는 암반을 깎아 마애불을 조성하였는데
영축산 통도사 산내의 유일한 마애불상입니다.
1896년에 조성했다는 기록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다는 금와공(金蛙孔).
자장암 전경.
전보다 당우가 많이 들어서 있는 모습입니다.
자장암 경내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카메라에 담은 뒤
사명암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점심 공양을 하고 있는 취현루 앞을 지나
해우소 앞에 '등산로 없음'을 알리는
자그마한 간판 뒤로 올라 숲으로 들어갑니다.
이후 뚜렷한 등로를 무작정 따르다
방향을 놓쳐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큼직한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무명봉에 서게 됩니다.
무명봉에서 바라본 영축산.
조금 더 우측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통도환타지아가 시야에 들어오고
멀리 울산의 문수산과 남암산도 바라보입니다.
사명암으로 가는 길은 좌측입니다.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사명암으로 가는 길은 좌측입니다.
사명대사가 머무시던 곳에 창건한 사명암(四溟庵).
♣ 사명암(四溟庵)
서운암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사명대사가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호한 곳이라고 전한다. 1573년(선조 6)에 사명대사를 흠모한 이기(爾奇)와 신백(信白) 두 승려가 암자를 지어 창건하였다.
세월이 흘러 조사당을 비롯한 2동만이 남아 있었으나 승려 동원이 중수, 증축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경내에는 사명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과 일승대, 월명정 등 총 5동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 봉안되었던 불화 '통도사 사명암 감로탱(通度寺四溟庵甘露幀)' 은 문화예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315호로 지정, 현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명암에는 2개의 정자가 있는데
1개는 사각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육각정입니다.
사각정은 '월명정(月明亭)'과
'무작정(無作停)'이란 현판이 붙어있고,
육각정엔 '일승대(日昇臺)'와
'욱일승천(旭日昇天)'이란
현판이 앞뒤로 붙어 있습니다.
뜻해서 육각정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사성제(고,집,멸,도)를 뜻해서 사각형이고,
육각정은 대승불교의 6가지 수행덕목인
육바라밀(보시, 인욕, 지계, 정진, 선정, 지혜)을
뜻해서 육각정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아미타불을 모셔서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극락보전'이란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자로 손꼽히는 이 곳은
우리나라에서 단 두명뿐인 무형문화재 단청장인
동원스님께서 계신 곳이기도 합니다.
오색찬란한 빛깔을 자랑하는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사명암을 떠나
다음 행선지인 백련암으로 가기 위해
좌측 포장길을 따라갑니다.
먼저 오른쪽의 백련암부터 찾아가기로 합니다.
옥련암과 백련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나게 됩니다.
먼저 오른쪽의 백련암부터 찾아가기로 합니다.
백련암 입구 우측에 버티고 서있는
수령 600년을 자랑하는 은행나무.
엄청난 크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입니다.
백련암 본당
♣ 백련암(白蓮庵)
백련정사라고 하며 사명암에서 남쪽 숲 속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주위에는 수목이 우거져 있고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어 운치가 있다. 1374년(고려 공민왕 23) 월화대사(月華大師)가 창건하였으며, 그 뒤 1634년(인조 12) 현암대사가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본전 법당, 광명전, 영월루(影月樓), 요사채 등이 배치되어 있다. 본전 법당은 1707년과 1863년에 중수하였으며 2002년 해체하여 다시 지은 건물로, '백련사(白蓮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법당으로 사용되었던 영월루는 건물 앞에는 '영월루', 뒤쪽에는 '강선루(講禪樓)'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큰 법당을 제외한 현존 건물은 여러 차례 중수하였을 뿐, 원형은 중건 당시의 건물로 추정된다. 근세 조선시대에는 선풍이 뛰어난 선원으로 유명하였으며 환성, 경허, 만해, 운봉, 향곡, 구산 등 큰 스님들이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포장도로를 따라 가려면 한참을 돌아서 가야하기에 예전처럼 지름길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지요. 휀스를 돌아나가면 조릿대가 우거진 계류 하나를 건너게 되는데 그동안 많은 이들이 지나다닌 때문인지 마른 나무가지와 조릿대가 등로를 방해했던 지난 날의 악전고투는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수월해졌네요. 중장비가 파헤쳐놓은 흙더미를 올라서면 그제서야 절집의 지붕이 눈에 들어오고 옥련암 요사채 뒷편으로 빠져나오게 됩니다.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옥련암 금당 '큰 빛의 집'
대개 '대적광전'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비해
옥련암에는 한글로 '큰 빛의 집'이라는
편액이 대신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 옥련암(玉蓮庵)
백련암에서 동쪽으로 약500m 떨어진 나즈막한 언덕 위에 있다. 1374년(고려 공민왕 23)에 쌍옥대사(雙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7년(철종 8)에 호곡(虎谷), 청진(淸眞) 두 승려가 중건하였다. 절 주위는 지세가 평탄하며 북쪽으로는 멀리 선자봉의 연봉을 조망할 수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인 ‘큰 빛의 집’, 무량수전, 요사채, 식당, 청소년회관 등이 있다. 큰 빛의 집에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 1,250 아라한 등이 봉안되어 있다. 옛날 이 암자에는 ‘장군수(將軍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물을 마시는 옥련암의 승려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 절의 승려들이 당해내지 못했다. 어느 날 큰 절의 승려들이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리자, 그 뒤로는 옥련암에 힘센 승려가 나오지 않았다 한다.
백련암에서 동쪽으로 약500m 떨어진 나즈막한 언덕 위에 있다. 1374년(고려 공민왕 23)에 쌍옥대사(雙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7년(철종 8)에 호곡(虎谷), 청진(淸眞) 두 승려가 중건하였다. 절 주위는 지세가 평탄하며 북쪽으로는 멀리 선자봉의 연봉을 조망할 수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인 ‘큰 빛의 집’, 무량수전, 요사채, 식당, 청소년회관 등이 있다. 큰 빛의 집에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 1,250 아라한 등이 봉안되어 있다. 옛날 이 암자에는 ‘장군수(將軍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물을 마시는 옥련암의 승려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 절의 승려들이 당해내지 못했다. 어느 날 큰 절의 승려들이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리자, 그 뒤로는 옥련암에 힘센 승려가 나오지 않았다 한다.
아치형의 소나무 두 그루가 주변의 석물들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계단을 내려와
장군수 한잔으로 목마름을 해결하고
좌측의 무량수전 뒤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대나무 숲사이로 서운암으로 향하는 등로가 나타납니다.
서운암 장경각
16만 도자대장경 불사를 91년 시작해 10년 만인
2000년 9월에 완성하여 이곳 장경각에 옮겨 보관중입니다.
♣ 서운암(瑞雲庵)
1346년(고려 충목왕 2) 충현대사(沖絢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9년(철종 10) 남봉대사(南逢大師)가 중건하였다. 근래에는 성파(性坡) 스님이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들꽃 축제와 된장으로 유명한 서운암은 수도암에서 들판을 내려와서 남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장경각에서 바라본 영축산과 영축능선의 멋진 모습.
'석잠풀'
'금낭화'
해마다 이맘 때쯤 서운암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작약이 올해도 어김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네요.
여유로운 마음으로 서운암을 찾아
아름다운 꽃들과 방사해놓은 동물들과 눈맞춤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것도 썩 괜찮을 것 같네요.
된장 맛이 좋기로 유명한 서운암의 장독.
서운암은 진귀한 볼거리가 많아
큰 절인 통도사 못지않게 관광객이 늘 붐비는 곳이라 하는데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2,000여개나 되는 장독입니다.
더구나 수많은 장독에서 만들어진
약된장과 간장은 맛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또한 매년 봄이 되면 들꽃축제가 열리고
이를 위해 30분 정도의 들꽃 관람 코스도 만들어 놓아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기도 하지요.
'샤스타데이지'
서운암 역시 인기 암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찾아온 불자와 관광객들이 뒤섞여 혼잡을 이루고 서운암에서부터 감시초소가 있는 삼거리까지 걸어가는 동안 도로변에는 차량의 물결로 가득차 있네요. 일방통행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각 암자에서 쏟아져 나온 차량들로 교통체증이 극에 달해 차라리 걷는 게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서운암을 출발하여 당도한 삼거리에서 좌측 감시초소를 끼고 지산마을 방향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차들과 나란히 걷다가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수도암 표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수도암 표석을 끼고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수도암 본당
♣ 수도암(修道庵)
취운암에서 남서쪽으로 비탈길을 약 200m 올라가면 있다. 1372년(고려 공민왕 21) 이관대사(爾觀大師)가 창건하였으며 정신대사(定信大師)가 중건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중수, 증축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경내에는 법당과 요사채, 산신각이 배치되어 있으며, 건물 규모는 모두 합하여 7칸 정도이다. 법당에는 월화대사(月華大師)가 쓴 '수도암(修道庵)' 현판이 걸려 있고 외벽에는 달마대사가 벽을 마주한 채 참선하고 있는 모습과 다양한 꽃들이 그려져 있다. 마당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한가운데는 작은 정원, 한쪽에는 텃밭이 조성되어 있다. 산내에서 가장 작은 암자이자, 조용하고 한적한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고즈넉한 수도암을 나와서 산길로 접어들면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노송 두 그루가 눈길을 끕니다.
이름하여 '형제송'이라 불리는 명품송이지요.
통도팔경(通度八景) 중 하나인
안양동대(安養東臺)에서 내려다보는 통도사의 전경입니다.
당우마다 연등이 가득하고
축하공연이 한창인 듯 음악소리가 요란하네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는 안양암.
♣ 안양암(安養庵)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되었다. 통도사 팔경(八景) 중 안양동대(安養東臺)에 위치하며 통도사 대웅전(보물 144) 앞 서남쪽 봉우리에 있다. 1295년(충렬왕 21)에 찬인대사(贊仁大師)가 창건하고 1865년(고종 2)에 중건하였으며 1889년(고종 26)에 우담대사(雨潭大師)가 다시 중건하였다. 법당(法堂)은 일명 보상암(寶相庵)이라고도 불리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翼工式) 팔작지붕 건물이다. 공포는 이익공(二翼工)으로 쇠서[牛舌]가 바깥쪽으로 길게 뻗었으며, 이익공의 쇠서가 특히 날카롭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넓은 기단 위에 처마가 깊고 공포가 밖으로 뻗어나와 안정된 느낌을 주는 조선 후기 양식의 건축물이다.
안양암 북극전(北極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7호)
북극전은 사람의 장수를 도와주는 북두칠성을 봉안하는 불전인데 중국의 도교신앙과 관계가 있는 칠성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수명신으로 불교화되어 북극전(칠성각)에 봉안되었다고 합니다.
칠성각은 우리나라에서 볼수있는 특유의 불전으로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칠성전에는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호법선신)으로 의인화한 칠성그림을 거는데 이곳 북극전에는 칠성탱화를 봉안해 놓았습니다.
안양암을 나와 안양동대로 다시 오르며 바라본 안양암과 영축산.
안양동대를 뒤로하고
수도암 방향으로 내려서면 바로 갈림길인데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등로를 만나게 됩니다.
곧장 가는 길은 통도사 오층석탑 방향이고
오른쪽 내림길이 바로 취운암으로 내려서는 길입니다.
도착한 취운암의 화단에는 '낮달맞이꽃'과
'덩이괭이밥'이 꽃을 피운 모습으로 반갑게 맞아주는군요.
통도사 취운암(翠雲庵)의 취운전(翠雲殿)
♣ 취운암(翠雲庵)
통도사 보타암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통도사의 대웅전을 짓고 남은 돈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1650년 (효종 원년)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창건하였고 1795년(정조 19)에 낙운대사(洛雲大師)가 중건하였으며, 1969년 태일화상(泰日和尙)이 다시 고쳐 지었다. 총 6동 128칸에 이르는 건물로 통도사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암자이다. 근래까지 취운암 법당 뒤쪽에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과거에도 역대 고승들이 많이 주석하였던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부도들은 모두 통도사 부도전으로 이전되었다. 사찰 내에는 문화재 자료 364호로 지정된 '지장시왕탱'이 소장되어 있다.
통도사 산내 암자를 찾아가는 도로변에 있다보니
관광객들 또한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해서
주변에 주차해 놓은 차량들이 꽤 많은 편입니다.
취운암에는 계율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영축율원도 함께 있는 곳입니다.
율원(律院)은 보통 총림(叢林)을 두고 있는
큰 절에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엔 통도사를 비롯해 해인사, 송광사, 백양사, 파계사에 5곳의 율원이 있으며, 봉녕사, 청암사에 비구니 율원이 있다.
율원의 역사는 1360여년 전인 6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계율을 공부하다 문수보살을 친견, 이때 받은 사리와 부처님 가사를 통도사 금강계단에 모시면서 우리나라의 율법이 시작됐다.
자장율사가 승려들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올바른 율법에 의하여 구족계를 받게 하기 위해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설립함으로써 개설됐다고 한다. 보통 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을 수좌, 강원에서 교리를 연구하는 스님을 강사라 부르며, 율원에서 계율을 연구하는 스님은 율사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나라엔 통도사를 비롯해 해인사, 송광사, 백양사, 파계사에 5곳의 율원이 있으며, 봉녕사, 청암사에 비구니 율원이 있다.
아치형의 화려한 연등이 눈길을 끄는 '보타암'입니다.
취운암 순례를 마치고 도로를 따라
산문 방향으로 200m쯤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보타암을 만나게 됩니다.
통도사 산내 암자 중 유일하게
비구니 스님들만 계신 곳이라
비구니 스님들의 자애롭고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곳이지요.
큰 법당과 약사전(우)
♣ 보타암(寶陀庵)
통도사 암자 중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며, 통도사 매표소를 지나 왼쪽으로 300m 정도 가다 보면 있다. 창건에 관하여 2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1927년 승려 영춘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와 비구니인 재덕과 호전이 원동의 토굴로부터 옮겨 지은 절로 정운과 호전이 증축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경내에는 법당과 약사전, 요사채 2동, 식당, 창고 등이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주위로는 담장이 둘러져 있다. 법당에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건물 정면에는 일제강점기에 통도사의 주지를 지낸 승려 구하가 쓴 ‘보타암(寶陀庵)’ 현판이 걸려 있다. 약사전에는 약사보살과 산신, 나반존자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절 마당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입구에서 법당에 이르는 길에는 걷는 이들을 배려한 박석(薄石)이 놓여 있다.
갖가지 꽃들을 사진에 담으면서
깨끗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맘속에 새기고
조용히 보타암을 빠져나와 참배객 차량들이 정체로 인해
꽉 막혀있는 도로를 가로질러 통도사 경내로 진행합니다.
♣ 영축산 통도사 (靈鷲山 通度寺)
통도사는 선덕여왕 15년(646)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에 의하여 창건되어 당시 경주의 황룡사가 왕실귀족불교의 중심지였던 것에 반하여 통도사는 산중에 자리 잡은 수행불교(修行佛敎)의 중심도량이었다.
통도사에 모셔진 부처님 사리와 금란가사는 자장스님이 문수보살로부터 바로 전해 받았다는 종교적인 신비감을 주고, 속고승전에서 당태종이 400함의 대장경과 금란가사를 하사하고 구부(九部)에 명을 내려 공양(供養)케 한 다음 귀국하게 하였음은 그 당시 당나라의 최고 권력자로부터 절대적인 귀의를 받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통도사는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사찰이라는 역사적 의의도 갖는다. 또한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전국의 모든 승려들을 이곳에서 계를 받아 득도하게 함으로써 승보와 법보 등 불교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삼보가 이곳 통도사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고려시대는 왕실과 대중의 귀의를 받자 사찰이 크게 증축되었고, 원나라 사신이 고려에 올 적에는 가장 먼저 통도사에 참배하였으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 서천국 108대 조사 지공대화상(指空大和尙)이 한동안 이곳에서 무생심지계(無生心地戒)를 설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는 억불정책과 임진왜란에 사찰이 전소되다시피 하였지만 우운대사(友雲大師) 등의 활동으로 대부분의 사우(寺宇)를 중창하였고, 조선 말기의 가혹한 종이공출과 잡역에 시달렸지만 백암선사(栢巖禪師)와 권돈인(權敦仁)대감의 활약에 의하여 고난을 벗어나 대한제국때 전국 16개 수(首)사찰을 정할 때 경상남도의 대본산(大本山)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형사제간인 구하대종사(九河大宗師)와 경봉대종사(鏡峰大宗師)와 같은 분들이 은사인 성해대종사(聖海大宗師)를 받들고, 어려움 속에도 포교와 교육에 힘을 기울였고, 이 당시 학인이었던 막내사제 경하스님(鏡河)께서는 불교발전을 위한 학생운동에 노력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월하대종사(月下大宗師)와 벽안대종사(碧眼大宗師)께서 불교정화(佛敎淨化)를 위하여 노력하셨고, 특히 월하대종사는 종합수도원을 이룩하기 위해서 노력하여 영축총림을 만들어 그 방장에 취임하여 총림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였고, 제9대 종정에 취임하여 종단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도서관인 '해장보각(海藏寶閣)'과 '설선당(說禪堂)'을 지나
일승교(一乘橋)를 건너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오색의 연등터널을 지나게 되고
하로전(下爐殿)의 중심건물인 영산전 앞에는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인
'관불식'을 올리려는 불자님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 조선(1644년), 국보 제290호.
건물의 4면에 편액을 걸었는데,
동쪽이 대웅전(大雄殿), 서쪽이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이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금강계단(金剛戒壇).
오늘은 화려한 꽃을 장식하여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고 있네요.
대웅전과 금강계단에 참배할 계획이었으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참배객들의 수효가 너무 많아
영지가 있는 곳에서 담 너머로 금강계단을 바라보며
합장 삼배를 올리며 마음속 염원을 담아 발원을 합니다.
홍매가 피는 이른 봄날이면
진사들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영각 앞의 자장매.
통도사 하노전((下爐殿)의 중심건물인
영산전 앞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삼층석탑을 가운데 두고 관불식이 거행되고 있고
탑 좌우로 극락보전과 약사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불식에 참여하고자 하는 불자들의 수효가 많은 때문인지
이번에는 석탑 좌우로 두 군데 설치를 해놓았네요.
일주문(一柱門)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라는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필적으로 유명하지요.
일주문의 기둥에 달려있는 주련(柱聯)에는
'국지대찰(國之大刹), 불지종가(佛之宗家)'라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가 씌어져 있답니다.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 옆에는
야간 연등축제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
다리 건너 공연장에는 작은음악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신나는 음악소리와 함께 열창하는 뮤지션들과 어울려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들이 보기 좋으네요.
성보박물관 앞에는
직접 두드려보고 만져볼 수 있는
북이나 조각품들이 전시되고 있고
유등으로 꾸며진 조형물이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 같습니다.
경내 산문에서부터 박물관까지 이어지는 도로에는
여덟 마리와 대웅전 뒤편 구룡지에 둘러앉은 한 마리의 용으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통도사 창건 설화를 표현해 놓았고
노송이 마치 춤을 추듯 어우러진 통도사 산문까지 이어지는
통도팔경의 하나인 무풍한송(舞風寒松)길에는
학으로 만든 연등이 소나무들 사이로 달려있어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네요.
참고로 '무풍한송'길은 춤추는 바람결에 물결치는
찬 소나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야간 점등행사를 보기위해 산문(山門)을 들어서는
차량의 행렬은 끝없이 밀려드는군요.
내년에는 야간행사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 4년 만에 다시 걸어본
통도사 암자순례를 무사히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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