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돌아온 주말... 이번에는 또 어디로 떠나볼까 생각하며 지도를 펼쳐놓고 산행지를 고르기 시작합니다. 이십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어도 산을 향한 그리움이 지금도 여전한 걸 보면 궁합이 참 잘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건강이 허락하고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다면 앞으로도 쭈욱 산과의 데이트를 지속해 나가리라 마음먹으며 오늘은 자차를 이용하여 팔공산으로 향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돌아와 사무실에서의 업무처리를 위해 차를 가지고 가기로 한 것입니다. 대구-포항간 고속도로를 달려 와촌I.C를 빠져나와 대구,경산의 경계인 능성고개를 넘어 백암삼거리에서 동화사 방향으로 차를 몰아 도착한 동화사 입구에 있는 분수광장 부근의 탑골주차장.
오전 9시가 되지 않은 시각이지만 넓은 주차장에는 산행과 피서를 나온 차량들이 제법 눈에 띄는군요. 나무 그늘 아래에 차를 세워놓고 산행 출발점으로 잡은 탑골등산안내소로 이동을 하여 GPS를 켜고 동화캠핑장 옆으로 나있는 산길을 따라 팔공산의 너른 품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염불암(念佛庵)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부속암자이다. 동화사에서 서북산정으로 3㎞ 지점에 위치하며 928년(경순왕 2)에 영조선사(靈照禪師)가 창건하였다.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창하였으며, 1438년(세종 20)에 중창하였다. 그 뒤 1621년(광해군 13)에는 유찬(惟贊)이 중창하였고, 1718년(숙종 44)과 1803년(순조 3), 1841년(헌종 7)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근대에 이르러서는 1936년에 운경(雲耕)이, 1962년에 혜운(慧雲)이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과 동당(東堂)·서당(西堂)·산령각(山靈閣) 등이 있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지장보살을 봉안하였는데, 그 후불탱화(後佛幀畵)는 부드럽고 섬세한 기법으로 그린 것으로 1841년의 중수 때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중요문화재로는 극락전 옆의 암석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 및 보살좌상이 1988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청석탑이 있다. 마애불상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 이 암자에 있던 한 승려가 이 바위에 불상을 새길 것을 발원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암자 주변에 안개가 끼기 시작하는데 7일 동안이나 걷힐 줄을 몰랐다. 7일 만에 안개의 걷힘과 함께 법당에서 나온 승려가 바위 곁에 가보니 발원하였던 불상이 바위 양쪽에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불상은 문수보살이 조각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염불암이라는 이름은 이 불상이 새겨진 바위에서 염불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청석탑은 극락전 앞마당에 있는데, 보조국사가 쌓았다고 하며, 아랫부분 3단이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위쪽 10단이 수마노석으로 된 높이 1.4m의 13층탑이다. 현재는 상층부 5층이 깨어져나가거나 갈라져 있다. 이 탑에는 이 절 일대에 칡덩굴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와 관련된 전설이 얽혀 있다. 보조국사가 이 탑을 쌓기 위하여 나무로 말을 만들어 타고 서해의 보령과 대천에서 수마노석을 운반해서 돌아오던 도중에 산길을 오르던 목마의 다리가 칡덩굴에 걸려 부러지고 말았다. 보조국사는 이에 크게 노하여 산신을 불러서 암자 부근에 있는 칡덩굴을 모두 없애라고 명령하였는데, 그 이후로 이 암자 아래의 양진암에서 상봉에 이르는 산등성이에는 칡이 자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서당 뒤편에는 오인석(五人石)이라 새겨진 책상 세 개 정도의 네모난 바위가 있는데, 이는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도망갈 때 그의 신하 5명이 쉬었다는 설과, 옛날 다섯 고승이 견성(見性)을 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염불암은 동봉 남쪽 아래 해발 900여m에 위치하여 팔공산 내의 암자 가운데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