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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달이 사는 집

추석연휴에 찾은 서울 북악산 산행 본문

◈ 산행이야기/☆ 2022년도 산행

추석연휴에 찾은 서울 북악산 산행

해와달^^* 2022. 9. 12. 22:59

♧ 산행일자 : 2022. 09. 09 (금)   날씨 - 맑음

♧ 산행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북구 일원

♧ 산행인원 : 홀로...

♧ 산행코스 : 지하철 경복궁역-진명여중고교 터-청와대 입구-춘추문-

♧ 산행시간 및 거리 : 4시간 20분, 10.87km (식사 및 휴식 포함)

 

 

 

▣ 산행지 소개 - 북악산(北岳山, 白岳山, 342m) 
서울특별시의 종로구와 성북구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으며, 일명 면악(面岳) · 백악(白岳) · 공극산(拱極山)이라고 한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도성을 건설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으며 오직 삼각산 면악(面嶽)의 남쪽은 산형과 수세가 옛 문서와 부합되니 주산 줄기의 중심 큰 맥에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지형에 따라서 도성을 건설하기를 청합니다.”의 내용과 『문헌비고』에도 “백악을 일명 면악이라 한다. 북부에 있다.”라 하고, 또 『한경지략』에 “백악이 도성 북쪽에 있는데 평지에 우뚝 솟아났고, 경복궁이 그 아래 기슭에 있다. 서울 도성을 에워싼 여러 산 중에 이 산이 우뚝 북쪽에 뛰어나니 조선왕조 국초에 이 산으로 주산을 삼고 궁궐을 세운 것은 잘된 일이다.” 라는 내용을 통해 또 다른 이름들을 볼 수 있다. 백악은 1395년(태조 4)에 “한성의 북악인 백악산신(白岳山神)을 진국백(鎭國伯)으로 삼아 국가에서 제사를 받들게 하니 그 사당을 백악신사라 하고, 이 신사가 있는 산을 백악이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1537년(중종 32년) 명나라 사신 공용경에게 주산인 백악과 서쪽 인왕산의 이름을 지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에 백악을 북쪽 끝을 끼고 있다는 뜻으로 ‘공극(拱極)’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한성부 도성 안, 궁성 북쪽에 있다. 앞에는 남산이 뾰족하게 솟았고, 뒤에는 북악산이 높도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 북악 뒤편에 서울 도읍터의 지형을 모두 갖추었다는 뜻으로 구진봉(335m)이 있는데, 개가 쭈그리고 앉은 모양을 하고 있어 구준봉(狗樽峰)이라 하기도 한다. 관련 지명으로 북악터널이 있다.

 

 

 

◈ 산행기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연휴를 맞았지만 매년 지내왔던 차례를 생략하다보니 딱히 할 일도 없는데다 딸내미가 연휴기간 내내 근무여서 내려올 여건이 되질 않아 이 참에 손주들 돌보며 연휴를 딸네집에서 보내자는 아내의 명령(?)에 군말없이 짐을 챙겨 목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포항역으로 달려가 주차를 해놓고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딸아이가 있는 영종도로 향합니다.

서울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직통)를 타고 40분 만에 영종역에 도착하니 근무를 마치고 배웅을 나온 딸내미와 해후를 하고 집으로 가 귀한 손주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아침 일찍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준비해간 배낭을 들쳐메고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가며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찾아갑니다.

원래는 북한산으로 산행지를 잡았으나 최근 청와대가 개방이 되고 54년 만에 완전 개방되었다는 북악산을 올라보자는 생각에 급히 행선지를 변경하여 버스 타고 공항철도에다 지하철 두번을 환승해가며 도착한 지하철 경복궁역 앞에서 GPS를 가동하며 오늘의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궤적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오늘의 산행을 시작합니다.
신한은행 효자동지점이 있는 사거리에서 우측 '자하문로 16길'을 따라 진행해 나가면
1906년에 세운 대한제국 최초의 여학교인 옛 진명여학교의 자리였음을 알려주는 빗돌을 만나게 됩니다.
경복궁 서쪽 담장을 따라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인 효자로.
청와대 영빈관이 건너보이고 그 뒤로 오늘 오르게 될 북악산이 솟아있네요.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 뒤로는 인왕산이 자리하고 있구요.
청와대 구경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나중에 기회 닿는대로 아내와 찾아보기로 하고 담장길을 따라 춘추관 방향으로 진행해 나갑니다.
청와대 정문.
청와대 정문과 마주하고 있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신무문(神武門)

신무문은 궁성의 북쪽 문으로 북쪽 궁성이 마련되고 나서 세워진 것이다. 신무문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성종 6년(1475)이다. 신무문 쪽은 인적이 드물었으나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해 놓은 회맹단이 있어 왕이 공신들의 충성을 다짐하는 모임이 있는 회맹제에 참석할 때에는 이 문을 이용하였다. 또 영조 때에는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에 참배하기 위하여 경복궁터를 길로 삼았는데, 이때 신무문을 자주 이용하였다. 신무문은 건춘문과 규모가 동일하며 현재의 문은 경복궁 중건 시 건립된 것이다.

 

청와대 춘추문을 통해 북악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개방이 되었다고 하는데 준비해간 궤적은 삼청공원 방향으로 안내를 하고 있네요.
총리공관 앞 삼거리를 지나 지금은 조용하기 그지 없지만 오늘 하루도 몸살을 앓게될 '삼청동수제비'집을 지나고
금융연수원과 삼청공원 입구 교차로를 지나면 마을버스 종점을 만나게 되고
삼청터널로 향하는 도로 우측으로 나있는 데크길을 따라 발걸음에 속도를 더해 봅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모드로 접어들어 삼청공원 후문으로 가는 길을 건너 숲으로 들어갑니다.
북악의 우거진 숲길을 따라서 조금 오르면 삼청안내소와 월운교 다리가 나오고 계곡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면 삼청 쉼터에 이르게 됩니다.
이 계곡의 삼청휴식장에서 여름철이면 경계를 서던 군인들이 목욕을 했던 곳이라고 하는군요.
삼청 쉼터에서 만세동방과 법흥사 터로 가는 길로 나뉘어 지는데 먼저 좌측 데크를 따라 청운대를 거쳐 북악마루로 올랐다가 숙정문을 거쳐 법흥사터를 지나 이곳으로 내려올 예정입니다.
등로는 잘 정비되어 있지만 청와대 경비를 위해 곳곳마다 감시센서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마치 감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은 별로입니다.
춘추관을 통해 청와대를 경유해 백악정을 거쳐 올라오는 새로이 개방된 등로와 합류가 되는 대통문이 있는 갈림삼거리입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있는 청와대전망대를 구경하고 되돌아와 우측 청운대로 향할 예정입니다.
청명한 날씨 덕에 멋진 조망이 펼쳐지는 청와대전망대. 가운데 남산타워가 보이고 멀리 관악산도 시야에 들어오는군요.
살짝 당겨본 경복궁.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과 이순신장군상 그리고 우측으로 세종문화회관도 보이는군요.
청와대의 푸른 기와지붕이 내려다보이고 경내 구경을 나온 탐방객들이 줄을 잇고 있는 모습입니다.
롯데타워가 보이는 잠실 방향.
대통문 입구의 안내판.
대통문을 지나 만세동방으로 가는 길은 야생 그대로인 듯 가파르게 솟구치는 등로를 따라 한발한발 올라서니
만세동방 쉼터가 나오고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약수터를 만나게 됩니다.
만세동방약수터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며 물 한모금 들이킨 후 계속되는 등로를 이으니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지는 청운대전망대에 이르게 됩니다.
청운대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으로 롯데타워 뒤쪽의 마루금이 남한산성이라고 하네요.
짧은 목재 계단을 올라서면 청운대삼거리에 서게 되는데
청운대를 거쳐 백악산 정상을 다녀온 뒤 이곳으로 되돌아와 숙정문으로 향할 예정입니다.
청운대삼거리에서 바로 올라가지 않고 감시초소 우측으로 내려서면 청운대까지 도성 밖을 걸을 수 있습니다.
청운대에서 바라본 북한산 비봉능선의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 보현봉, 형제봉
청운대(靑雲臺, 해발 293m) 표지석에서...

 

북악산 전면 개방을 기념해서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의 최정상인 '백운대'를 본떠 '청운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성곽길을 따라 잠시 걸어가다 보면 역사의 현장을 만나게 되는데
어릴 적 대한뉴스에서 보았던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그날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1.21사태 소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소속의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공비들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현 청운실버센터(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 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우리 군 · 경과 치열한 교전 중 현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되었고, 이후 이 소나무를 1.21사태 소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무장공비 일당은 당시 청와대 및 주변시설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침투하여 아군복장과 민간복 착용, 취객으로 위장하는 등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도발을 자행하였다. 
1월 21일 교전 후 14일간 작전 결과 침투한 31명 중 28명 사살, 2명 도주, 1명을 생포(김신조)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68.4.1.)이 창설되었다.

 

북악산 정상(北岳山, 해발 342m)입니다. 정상석에는 백악산(白岳山)으로 표기하고 있네요.
청운대로 다시 돌아와 못다 찍은 풍경을 담아보니 동쪽으로 구진봉 너머 도봉산이 아스라하고 우측으로 수락산, 불암산도 보이네요.
청운대삼거리를 지나 숙정문 가는 길에 곡장을 잠시 찾아보니 건너편으로 5년전 아내와 함께 걸어보았던 북한산 비봉능선이 펼쳐지네요.

 

 

곡장(曲墻)

주요 지점이나 시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성벽의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켜 쌓은 성을 말하는데 인왕산과 백악산에 하나씩 있다. 곡장은 도성을 둘러싼 산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꼽힌다.

 

곡장에서 내려와 그늘진 곳에서 점심 요기를 하고 자리를 털고 바라본 북악산과 인왕산.
'촛대바위' 이정표가 있어 찾아보았지만 커다란 바위가 있긴 한데 촛대바위의 형상이 보이질 않아 되돌아 나와
수령이 제법 되어 보임직한 소나무들의 사열을 받으며 숙정문을 향해 성곽길을 따릅니다.
북악팔각정과 구진봉.
숙정문(肅靖門)

 

 

숙정문(肅靖門)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년(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숙청문이 숙정문으로 바뀐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이다. 숙정문 외에 북정문(北靖門)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1504년(연산군 10)에 연산군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기라고 명령한 기록이 보이는데, 실제로 문을 옮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숙정문은 1976년에 복원한 것이다.
도성 북문이지만,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서쪽 성곽 0.5㎞, 북쪽의 진입로 0.6㎞ 구간과 함께 다시 일반에 개방하기로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촛대바위 쉼터.
전망대삼거리 (↑ 만세동방, ↓ 숙정문, ← 삼청안내소, 법흥사 터)에서 좌측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줄을 쳐놓아 멀리서 당겨본 법흥사 터.

 

이곳은 신라 진평왕 때 나옹 스님이 창건한 법흥사 터라고 전해지던 곳으로, 문헌에 따르면 "조선시대 세조 임금이 연굴사 동쪽(지금의 삼청터널 근처)에서 호랑이를 사냥했다" 라는 내용을 통해 연굴사 터로도 추정된다. 또 절 터 주변에서 15세기 상감분청사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조선 전기부터 건물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만난 삼청 쉼터.
아침 나절 지나쳤던 삼청안내소를 지나와
삼청공원 후문 방향의 숲길을 따라 막바지 걸음을 옮겨가니 실질적인 산행은 끝이 나고 마을버스 종점을 지나 삼청동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조선시대 총포를 만들었던 화기도감 터였음을 알려주는 표석.
아침에 인적이 끊어졌던 삼청동수제비 식당에는 몇 겹의 줄이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네요.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경복궁, 청와대, 삼청동 주변으로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이 무척 많이 보여 과연 서울이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경복궁 건춘문(景福宮 建春門).

 

 

경복궁 건춘문(景福宮 建春門)

건춘문은 궁성의 동쪽 문으로 만물의 기운이 움트는 ‘봄이 시작 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건춘문은 주로 세자와 동궁 영역에 위치한 각사에서 일하는 신하들이 출입하던 문이다. 현재의 문은 고종 2년(1865) 경복궁 중건 당시 건립된 것이다.

 

경복궁 동십자각(東十字閣).

 

 

경복궁 동십자각(東十字閣)
동십자각은 궁성의 동남쪽 모서리에 서있는 각루(角樓)이다. 궁성 담장이 헐리면서 현재와 같이 길 한가운데 서있게 되었다. 동십자각은 서십자각과 함께 궁성 전면 양 모서리에 궁궐 안팎을 감시할 수 있도록 세운 것인데,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에 헐려버렸다.

 

서울공예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2021년 종로구 안국동에 문을 연 서울공예박물관은 서울시에서 (구)풍문여고 건물 5개 동을 리모델링하여 건축한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입니다. 서울공예박물관은 공예품뿐만 아니라, 공예를 둘러싼 지식, 기록, 사람, 환경 등을 연구하고 공유함으로써 공예가 지닌 기술적/실용적/예술적/문화적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역동적인 플랫폼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서울공예박물관은 전통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시대와 분야를 아우르는 약 1만여 점의 공예품과 공예자료를 수집, 보유하고 있으며 공예역사전시, 현대공예전시, 지역공예전시, 어린이공예전시, 공예 아카이브, 공예 도서관, 공예자원관리시스템, 공예작품설치 프로젝트 등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 자료와 시스템을 준비 중입니다.
서울공예박물관 터는 세종의 아들 영응대군의 집, 순종의 가례를 위해 건축된 안국동별궁 등 왕가의 저택으로 사용되거나 왕실 가례와 관련된 장소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또한 이곳은 수공예품을 제작하여 관에 납품하던 조선의 장인 '경공장(京工匠)'들이 존재했던 종로구의 중심 지역이기도 하며, 주변에 북촌, 인사동, 경복궁 등이 인접해 있어 다양한 문화적 경험이 가능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도착하면서 추석 연휴에 찾은 북악산 산행은 끝을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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