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부처님 오신 날에 다시 걸어본 은해사 5암자 순례 산행 본문
♧ 산행일자 : 2023. 5. 27 (토) 날씨 - 흐리고 이따금 비
♧ 산행장소 : 경산시 와촌면, 영천시 청통면 일원
♧ 산행인원 : 오늘도 변함없이 홀로...
♧ 산행코스 : 경산갓바위주차장 입구 감나무집식당-은해능선-묘봉암-중암암-삼인암,만년송-운부곡-운부암-운부고개-백흥암-560.3봉(폐헬기장)-기기암-629.2봉(삼각점)-은해능선-전망바위-감나무집식당 (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5시간15분, 11.77km(식사 및 사찰 구경 포함. GPS 기준)
◈ 산행기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일찌감치 봉축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어사로 가버린 집사람이 차려놓은 아침을 먹으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생각하고 있었던 오늘의 계획은 통도사를 함께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하루 종일 행사가 잡혀있다는 아내의 말에 계획은 다 틀어져버리고 홀로 집에 있으려니 무료함을 달랠 길이 없어 서둘러 배낭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 매년 해오던 암자순례 산행은 지리산 7암자를 다녀온 것으로 마무리를 한 상태지만 다른 곳으로 한번 더 다녀오자는 생각에 오래 전 걸어보았던 은해사 산내 암자들을 떠올리며 차를 몰아 경산 갓바위주차장으로 달려갑니다.
은해사가 품고 있는 8암자 중 따로 떨어져 있는 거조암을 제외하고 7암자를 오래 전에 둘러 보았지만 오늘은 은해사 입구의 혼잡함을 피하기 위해 경산갓바위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은해능선을 올라 은해사 경내 가까이에 있는 서운암과 백련암은 건너뛰고 묘봉암, 중암암, 운부암, 백흥암, 기기암 다섯 암자를 차례로 찾아볼까 합니다.
이미 몇 차례 찾아본 곳들이긴 하지만 부처님 오신 날에만 개방하는 백흥암을 한번 더 구경하기 위한 마음이 더해져 갓바위주차장을 향해 달려가니 너른 주차장은 이미 만차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네요.
하는 수없이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변에 줄지어 서있는 차량 뒤꽁무니를 따라 주차를 해놓고 출발 포인트로 잡은 감나무집식당을 향한 걸음을 시작합니다.
묘봉암(妙峰庵)
묘봉암은 833년(흥덕왕 8)에 심지(心地)왕사께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오랫동안 관음기도처와 수행처로 전승되어 오다가 1485년(성종 16)에 죽청(竹淸)과 의찬(義贊)이 중창하였고 1780년(정조 4)에 다시 중창하였으며, 최근에 6·25사변 당시 폐사된 것을 법운(法雲)스님께서 중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관음기도와 신신기도처로 유명하고 과거에는 나라에 큰일이 있거나 큰 절에 행사가 있을 때에는 은해사 대중스님들이 모두 올라오셔서 산신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지며, 산령각 옆 석간수는 불치의 병도 낳게한다는 신비의 약수로 유명하다.
원통전은 과거 석굴에서 기도를 해왔던 곳으로 석굴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높이가 매우 높아 정사각형의 모양에 가까운데 이는 내부에 큰 돌이 뻗어 있어 그 아래에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하고, 왼쪽 위에 2층을 만들어 석가모니불을 봉안하였기 때문이다.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기도 하다.
중암암(中巖庵)
산사를 찾다 보면 정말 기상천외한 곳에 자리한 산사에 입이 벌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대구의 진산인 팔공산에 있는, 일명 돌구멍 절로 알려진 중암암(中巖庵)이 그런 산사 중의 하나다. 돌구멍을 통하여 절을 드나들게 되어있고, 우리 나라에서는 제일 깊다는 해우소(화장실)와 보일러실도 돌구멍 속에 있다. 뿐만 아니라 돌구멍 구멍들이 이런 저런 용도로 활용되고 있으니 제격에 딱 어울리는 절 이름이다. 이런 절, 보는 것만으로도 입을 벌리게 하는 절들은 그 규모가 어찌 되었건 찾아가 보는 것만으로도 산사 찾는 맛을 더해 준다.
중암암은 은해사 산내 말사다. 은해사 일주문을 통하여 4Km쯤 들어가야 갈 수 있는 중암암은 은해사의 산내암자로서 신라시대 화쟁국사 원효(元曉)스님 (617~686)께서 토굴을 짓고 정진한 곳으로 널리 전해진 곳에 신라 광덕왕 (光德王) 9년 (서기 834년)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다. '중암암'이라는 이름보다는 한문을 풀어 말하는, 일명 돌구멍절로 더 알려진 조그만 암자다.
이곳의 해우소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옛날 해인사, 통도사, 중암암에서 수행하던 세 도반 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자기가 있는 절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먼저 통도사 스님이 '우리 절은 법당 문이 얼마나 큰지 한 번 열고 닫으면 쇳가루가 한 말 석 되나 떨어진다.'라고 절의 규모를 자랑하였답니다.
이어 해인사 스님이 '우리 절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이 하도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쑬 때는 배를 띄워야 저을 수 있다.'라고 자랑했다는군요.
두 스님의 자랑을 듣던 중암암 스님은 절의 규모로는 자랑할 게 없자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리 절 뒷간은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정월 초하룻날 볼 일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라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자랑을 하여 세 스님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은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있는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내 암자인 중암암에 위치하고 있다. 암벽 아래에 암석 틈에 붙어서 불당이 있어서 암자 이름이 중암암(돌구멍절)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불당지 한켠에는 불당 창건 때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어골문(魚骨文) 기와 조각이 쌓여 있다.
이 석탑은 높이가 약 3m로, 석탑의 양식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으로 되어 있다. 잘 다듬은 장대석 4개를 결합하여 지대석으로 깔고, 그 위에 2층 기단과 3층의 탑신부를 올렸다.
지대석은 규격을 달리하고 있으나 잘 다듬은 4개의 장대석을 정사각형으로 결합시켜 깔았다. 기단은 2층으로 상·하기단의 각 면석에는 각 면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모두 정육면체로서 층위가 올라갈수록 높이가 낮아지는 것 외에는 동일한 양식이다. 옥개석은 모두 낙수면의 경사가 심하고 우동과 전각(轉角)의 반전이 심한 편인데, 옥개받침은 4단에서 3단으로 줄어들었다. 보륜석은 노반 위에 얹혀 있는데 반구 모양이며, 가운데에는 찰주공(擦柱孔)이 노반에 이어서 관통하고 있다.
탑의 양식은 통일신라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부가 약화되었고,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가 심해지고 전각의 반전도 많아진 편이다. 또한 전체 규모가 작아져 장식성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석탑의 조성시기는 이곳 암자의 창건시기와 같이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손상을 입지 않았고 보존이 깨끗하여 가치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화엄굴이라고도 하며 김유신 장군의 설화가 깃든 곳입니다.
암튼 일단 들어가면 앞쪽의 좁은 틈으로 빠져 나가야 하는 불안감이 확.. 드는데 다행히 중간쯤에서 우측으로 바위틈이 있고 몸 하나는 빠질만한 공간이 있는데 이곳을 나오면 바로 중암암 위 석탑을 만나게 됩니다.
중암암 법당 위쪽으로 커다란 바위 세 개가 멋지게 이어져 있는 곳에 닿게 되는데, 첫 번째 바위에 음각으로 커다랗게 삼인암(三印岩)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시집간 새댁이 아이를 못낳다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여 삼형제를 낳았다는데...
운부암(雲浮庵)
조계종 은해사의 산내 암자인 운부암은 711년(신라 성덕왕 10)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절을 지을 때 상서러운 구름이 일어났다 하여 운부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몇 차례의 화재로 인해 전소와 중건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당에 들어서자 이미 '문자'를 떠난 지 오래인 편액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운부난야(雲浮蘭若)', 문자로는 읽어낼 수 없는 공간이다. 운부암 선방의 당호다.
난야는 아란야(阿蘭若)의 준말로 적정처(寂靜處), 무쟁처(無諍處)를 뜻하며, 수행하기 적합한 곳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이곳 운부암은 많은 선지식이 거쳐 갔다. 경허, 만공 스님으로부터 용산, 운봉, 경봉, 향곡, 한암, 팔봉, 청담, 성철 스님 등 많은 선지식들이 정진했다.
특히 성철(性徹;1912~1993) 스님과 향곡(香谷;1912~1978) 스님은 이곳에서 만나 평생 도반이 됐다.
보화루(寶華樓)
금은 보화를 품고 있는듯한 이름이지만 색바랜 옛모습 뿐이다. 화려한 단청은 사라지고 처마엔 세월이 들러붙어 있다.
어느 사찰에서나 처럼 누각이 부처님의 터를 호위무사처럼 가로막고 있다.
누각인 보화루는 1862년 원통전과 함께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운부암중건기'와 <조선사찰사료>에 나와 있는데 현존하는 건물은 1900년에 중건된 것이다. 보화루라는 이름은 화엄학(華嚴學) 또는 화엄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은해사와 말사 암자인 백흥암과 군위 지보사에도 보화루라는 누각이 있다.
북마하 남운부(北摩訶 南雲浮)
운부암은 근세 한국의 조사 스님들의 근본 수행처로 전해지고 있고, 남한의 2대 중심선원으로 구미 태조산 도리사와 팔공산 운부암을, 북한에는 내금강 마하연과 묘향산 상원암을 꼽았다고 하는데 남,북 각각 하나씩만 꼽으라 하면 북한에는 마하연을 남한에는 운부암을 꼽았다고 하여 북마하 남운부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운부암을 거쳐 간 조사스님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형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원하지 못한게 구름...
인간의 욕망도 구름과 같습니다.
"구름이 비가되어 내리듯
덧없는 욕망을 쫓는데 허비하지 말고
스스로 불성을 깨치라"고
말없이 가르침을 전하는 암자.
운부암(雲浮庵)...
팔공산 자락에 운부암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보화루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인 '山海崇心(산해숭심)'이라는 현판으로 원본은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산해숭심'은 청나라의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인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이 제자인 추사에게 학문 태도를 격려하며 보낸 편지에 적힌, '옛 것을 고찰하여 오늘을 증명하니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다(攷古證今山海崇深)'는 잠언 구절의 일부다. 추사는 스승의 편지를 읽고 이 구절을 인용해〈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을 지었다고 한다. '산해숭심'은 또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가 한없이 높고 깊은 산과 바다와 같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출처 : 불교저널)
백흥암(百興庵)
사기(史記)에 의하면 이 절은 혜철(惠徹)국사께서 861년(경문왕 1년)에 착공하여 873년에 완공하였으며 지금은 은해사에 소속된 절이지만 절이 지어질 당시에는 별개의 사찰로 주변에 잣나무가 무성하여 백지사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종 16년(1521) 인근 팔공산 태실봉 기슭에 아들 인종의 태를 보관하면서 중요한 것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막중수호지소'로 지정되어 국가의 지원을 받아 번성하였고 명종 1년(1546)에 낡은 건물을 새로 고쳐 지으면서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요 전각으로는 극락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 심검당, 보화루 등이 있어 암자라고 하기엔 상당히 규모가 크다. 극락전은 보물 제790호, 극락전 수미단은 보물 제486호, 극락전 감로왕도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흥암 수미단(百興庵 須彌壇)
수미단이란 상상의 산인 수미산 형태의 단을 만들고 그 위에 불상을 모시는 불단를 말한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永川 銀海寺 百興庵 須彌壇)은 극락전에 있는 높이 125㎝, 너비 413㎝의 조선 후기에 만든 불단이다. 앞쪽 면은 5단으로 되어 있으며, 각 단도 5등분 되어 각각 직사각형 모양이다. 가장 위에 있는 단은 안상문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제2단은 봉황·공작·학·꿩 등을, 제3단은 용·어린아이·물고기·개구리 등을 매우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제4단은 꽃잎 속에 있는 코끼리·사자·사슴 등을 조각하였고, 가장 아래단의 양쪽 끝에는 도깨비 얼굴을, 가운데 부분에는 용을 조각하였다.
각 단에 있는 새나 동물의 배열이 특색 있고, 조각기법도 매우 우수하다. 이런 특징이 있는 불단은 조선 후기 작품으로 더러 남아 있지만, 이 불단은 그 중에서도 대표되는 작품으로 가치가 있다. (출처: 문화재청)
無二堂이란 말은 법화경 ‘무이역무삼(無二亦無三)'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로, '성불(成佛)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요. 이도(二道), 삼도(三道)가 없다.'라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뿐인 깨달음을 향해 매진하는 수행자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기기암(寄寄庵)
은해사골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이 암자는 팔공산에 많은 절이 창건되고 마애불상이 집중되어 불교 성지로 변하는 시기인 9세기에 조성된 절 가운데 창건 연대가 가장 빠르고 실제 기록도 남아있는 사찰입니다.
이 사찰은 애장왕때 국사로 봉안된 정수(正秀)스님이 816년(헌덕왕 8)에 국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하면서 안덕사(안덕사) 또는 안흥사(安興寺)라고 하였으나, 고려 명종 16년(1186년) 기성(기성)대사가 머물면서 사찰 이름을 '기기암'으로 바꿔 불렀다고 하는데 당시 이 사찰에는 60여 명의 승려가 살았다고 합니다.
1546년에는 쾌선스님이 중건하였고 다시 1823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당우로는 요사와 법당을 겸한 건물 1동이 있으며 선방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에 팔작지붕 건물로 근래에 조성되었습니다.
이 암자는 '신기사바 심기극락(身寄娑婆 心寄極樂)'이라 하여 '몸은 비록 사바세계에 있으나 마음은 극락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편안한 수행처인데 현재 선방에는 비구스님들이 참선 정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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