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달이 사는 집
만추의 계절에 찾은 경주 안강 도덕산 본문
♣ 산행일자 : 2020. 11. 21 (토) 날씨 - 흐림
♣ 산행장소 : 영천시 고경면, 경주시 안강읍 일원
♣ 산행인원 ; 아내와 둘이서...
♣ 산행코스 : 독락당주차장-정혜사지13층석탑-갈림길-주능선 합류-전망바위-도덕산-낙동정맥갈림길-임도 쉼터-옥산지갈림길-송전철탑(NO.30)-321봉-298봉-민내마을도로-옥산저수지-장산서원-독락당주차장(원점회귀)
♣ 산행시간 및 거리 : 5시간 40분, 11.09km (식사 및 휴식 포함. GPS 기준)
▣ 산행지 소개 - 도덕산
도덕산은 자옥산과 이웃해 있으며 낙동정맥이 해안가를 타고 줄곳 남하하다가 이곳 도덕산에 와서는 그 기세를 누그러 뜨리고 내륙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지점이기도 하며, 경주시 안강읍과 영천시 고경면의 경계에 자리한 해발 702.6미터의 아담한 산이다.
산세가 그리 빼어나지는 못하지만 산자락으로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흥건하여 반드시 한 번은 올라야 할 산이다. 국보 40호인 정혜사지 13층석탑이며 조선시대 영남오현의 한 분이신 회재(晦齋)이언적(李彦迪 1491~1553)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세우고 기거하신 독락당(獨樂堂 보물 413호)과 계정(溪亭)의 즐비한 고목과 중국주엽나무(천연기념물115호)며 명필 한석봉, 퇴계 이황, 아계 이산해 선생들의 친필 현판글씨며 선조 5년(1572년)에 이언적선생을 제향하기 위해서 세운 옥산서원(玉山書原 사적154호)과 그곳에 보관중인 보물524호인 정덕계유사마방목, 525호인 보물 삼국사기, 526호인 해동명적 등 약 230종의 2197권의 책이며, 최근에 세웠으나 먼 훗날 명소로 남게 될 염불종의 총본산인 대가람 대흥사등 자락자락에 둘러보아야 할 곳이 수두룩하다.
정상의 넓은 반석들에 올라서면 안강벌판과 포항 그리고 멀리 동해바다 및 호미곶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관계로 지역 산꾼들이 간간이 찾고 낙동정맥을 찾는 이들을 가끔 만날 수 있다.
◈ 산행기
휴일 오전근무가 잡혀 있어 이번 주말에는 근교의 산으로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산행준비를 마친 후 어부인 대동하고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주 안강에 있는 독락당을 목적지로 삼고 차를 몰아갑니다.
오늘 오르고자 하는 도덕산은 그동안 자주 올랐었던 산으로 주로 자옥산과 연계해서 오르지만 오늘은 도덕산만 찾아보기로 합니다. 대신 하산코스를 도덕암이 아닌 봉좌산 방향으로 더 진행하다 옥산지로 떨어지는 지능선을 따라 내려오기로 마음을 먹고 궤적 하나 만들어 나선 걸음입니다.
도착한 독락당주차장에는 주말이지만 날씨가 쌀쌀한 때문인지 도덕산이나 독락당을 찾은 탐방객들이 눈에 띄질 않네요. 하긴 등산객들 대부분이 지나온 산장식당을 들머리로 삼고 있으니 이곳까지 차를 몰고 올 이유는 없겠지요.
화장실을 다녀와 몸을 가볍게 한 뒤 배낭을 들쳐메고 독락당 앞을 지나 올려다보이는 도덕산을 바라보며 오늘의 산행을 시작합니다.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정혜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특수형 석조 불탑이다.
안강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10㎞ 되는 옥산서원(玉山書院)을 지나 옥산리의 독락당(獨樂堂)에서 북쪽 700m쯤 되는 곳에 우뚝 서 있다. 정혜사지 일대의 경작지에는 기왓장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데 과거 정혜사의 중심을 이루었던 사역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13층석탑은 각 부의 양식과 조성수법에서 오직 하나 밖에 없는 특이한 유례를 보이고 있어 크게 주목된다. 1962년에 국보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장산서원(章山書院)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유생 잠계(潛溪) 이전인(李全仁)을 봉향하는 서원으로,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다. 1780년(정조 4)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2006년 11월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선계묘(善繼廟), 지습당(知習堂), 심고재(尋古齋)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전인은 1516년(중종 11)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의 서자로 태어났다. 이언적이 정미사화(丁未士禍)에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될 때 함께 동행하여 부친을 지극정성으로 섬겼으며, 일평생 이언적의 학문과 행적을 알리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1568년(선조 1) 53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추증되었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독락당(獨樂堂) - 홀로 즐거이 쉬는 곳
옥산서원에서 서북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락당(獨樂堂)은 이름이 뜻하는 대로 회재 이언적이 중종 27년(1532)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살던 집의 사랑채의 이름으로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도 한다. '독락당' 편액은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글씨이며 '옥산정사' 편액은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독락당의 동편에는 계곡이 흐르고 그 사이에는 담장이 있어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담장의 일부를 뚫고 살창을 설치하여 계곡에 흐르는 시냇물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또 독락당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별당으로 지어진 계정(溪亭)일 것이다. 계정은 방 한칸과 마루 두칸에다 계곡 쪽으로 쪽마루를 내고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른 간단한 구조이다. 그러나 계정은 계곡의 물과 바위, 푸른 숲과 이어지는 자연 속의 공간이다. 1688년 계정에 올랐던 우담 정시한은 그의 기행문집인 '산중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정자는 솔숲 사이 너럭바위 위에 있는데 고요하고 깨끗하며 그윽하고 빼어나 거의 티끌 세상에 있지 않은 듯하다. 정자에 올라 난간에 의지하여 계곡을 바라보니 못물은 맑고 깊으며 소나무·대나무가 주위를 감쌌다. 관어대(觀魚臺)·영귀대(詠歸臺) 등은 평평하고 널찍하며 반듯반듯 층을 이루어 하늘의 조화로 이루어졌지만 마치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하다. 집과 방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 계곡과 산에 잘 어울린다."
오른쪽 벽에는 '계정' 편액이 붙어 있는데 한석봉의 글씨이다. 계정의 한쪽 작은 방 위에는 '양진암'(養眞菴)이라고 쓴 커다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양진암은 이름 그대로 마치 암자와 같이 쓰인 곳이라고 한다. 회재는 어린 시절에 여기서 글을 읽었고, 낙향하여 은둔하던 시절에는 정혜사의 승려와 함께 교류하며 학문과 사상을 나누던 곳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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